많은 예술작품이 그것을 접하는 시점과 상황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리게 마련이지만, 그 차이가 가장 큰 장르는 바로 동화다. 기억의 파편들만을 가지고 있을 어른들은 거짓말로 코가 길어진 나무인형쯤으로, 혹은 불을 이용해 고래 뱃속에서 탈출한 지혜를 가진 인물로 어린 시절의 ‘피노키오’를 기억한다. 하지만 거짓말과 지혜를 넘어 삐노끼오의 모험을 통해 잃어버린 동심을, 혹은 의외로 성장의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삐노끼오의 모험>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지난 200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초연된 뮤지컬 <일 삐노끼오>(Il Grande Musical Pinocchio)가 바다 건너 서울에 상륙해 8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KBS <결혼 못하는 남자>의 조재희처럼 어린아이는 그저 행복한 싱글라이프를 방해하는 ‘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목수 제페토는 어느 날, 완벽한 인형을 만들어 아빠 연습을 해보라는 주위사람들 이야기에 벼락 맞은 소나무로 인형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행운을 가져오듯, 벼락 맞은 소나무로 만든 나무인형은 마음을 가진 채 살아 움직인다. 반쪽짜리 마음을 가진 삐노끼오와 제페토가 가족이 되는 연습을 해나가는 도중 세상만사 모든 것이 신기했던 삐노끼오는 사기꾼의 꾐에 빠져 금화 나무를 찾아 숲 속으로 떠났다가 예기치않게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장난감 나라, 서커스단, 바닷속을 헤매며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 삐노끼오는 마침내 고래 뱃속에서 아빠 제페토를 만나고 가족과 규칙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동화 속 인물과 동일시 되게 만드는 무대
먼저 우리나라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비비드한 컬러감의 무대와 독특한 배우들의 메이크업이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었던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프랑스 뮤지컬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이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다. 오페라의 고장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작품인 만큼 낯설다는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지만, 오히려 낯섦은 시의 운율을 떠올리는 프랑스 뮤지컬에서 갖게 되는 감정이다. <일 삐노끼오>에서는 단순히 클래식에만 집중하지 않으며, 이탈리아 대표적 가곡 칸초네와 라틴, 팝 등이 두루 사용되면서 오히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함을 전달한다. 특히 삐노끼오가 루치뇰로를 따라 장난감 나라에 가게 된 에피소드에서는 힙합풍의 음악과 함께 배우들의 비보이 실력도 선보인다.
화려한 무대와 신나는 음악으로 극은 끝을 향해 나아가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롤에 대한 이해 없이 원하는 것들만 강요했던 삐노끼오와 제페토는 삐노끼오가 사라짐으로 인해 서로 그리워하게 되고 결국 이해했을 때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훈훈한 결론에도 ‘착한 어린이’라는 지극히 도덕적인 잣대가 극 전반을 타고 흐르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해가 반드시 모든 규칙에 의해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라며 모든 감정과 사물의 이름에 호기심을 가졌던 개구진 수다쟁이 같던 삐노끼오가 사회적 규칙들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부분은 씁쓸함을 남긴다. 영원한 친구를 맹세했지만 결국 여자 친구에게 나무인형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어 하는 루치뇰로의 모습을 통해 “나는 다시 나무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요. 적어도 나무는 자라니까”라는 대사를 하는 삐노끼오에게 전해주고 싶다. 가끔은 자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