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은 분명하다. 그가 하는 뮤지컬도, 그가 말하는 모든 단어들도 분명하고 단호하다. 좋은 것은 ‘정말 정말’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달고 말하지만, 싫어하는 것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그저 “싫다”라는 단도직입적인 한마디로 끝이 난다. 뮤지컬 <락햄릿>을 시작으로 <렌트>, <헤드윅>, <록키호러쇼>를 관통하는 록이라는 정서는 그래서 그렇게 송용진이라는 이름으로 한줄 서기를 하는 모양이다. 창작뮤지컬 <젊음의 행진>, <형제는 용감했다> 등의 다른 지점들 안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만, 특히나 록뮤지컬에서만큼은 자신의 120%를 보여주며 송용진만의 영역을 굳혀나가고 있다. 그런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텐데도, “록뮤지컬이라고 했을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게 나라면 그건 정말 좋은 것 같고 또 나만의 경쟁력이기도 하니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캐스팅도 잘 되고”라며 웃는다.
최근까지 뮤지컬 <헤드윅>과 <록키호러쇼>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던 그는 이제 “주류 콘텐츠에 노략질을 하는 느낌”으로 작명한 ‘음악창작단 해적’이라는 인디레이블을 설립해 사장님이 되었다. 평소에도 잠을 자긴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하루 24시간을 살뜰하게 살던 그는, 사장님이 되면서부터 “항상 그 전에도 바빴는데 그 한계를 뛰어 넘은 것 같”단다. 밴드 ‘쿠바’와 ‘ㅏOPA(유라)’ 속 섹시한 음성와 몸짓으로 노래를 부르던 록커에서 뮤지컬 배우로, 다시 록커에서 사장님으로 변신한 그는 역시나 자신의 No.1 뮤지컬로 <헤드윅>을 꼽는다. 단 1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저는 두말할 것 없이 <헤드윅>이죠. 다른 걸 제가 어떻게 얘기하겠어요”라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작품에 대한 애정을 쏟아낸다. “몇 년을 해도, 평생 죽을 때까지 좋아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은 잘 알려진대로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자와 여자, 위와 아래’의 경계선 위에 굴곡진 삶을 살아나간 한 트렌스젠더 록커의 이야기다. 1994년, 뉴욕 드렉퀸 쇼가 펼쳐지는 록클럽에서 뮤지컬로 먼저 시작된 <헤드윅>은 ‘헤드헤즈’라 불리는 마니아들의 큰 호응에 힘입어 더욱더 유명해졌고, 뮤지컬은 곧 영화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에서도 헤드윅을 맡았던 존 카메론 미첼은 동명 영화에 감독과 배우를 맡아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서 큰 사랑을 받았다. 눈물과 아픔을 웃음과 음악으로 위로하던 <헤드윅>은 2005년 조승우, 오만석, 김다현, 송용진과 함께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후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벌써 4년이다. 그 4년이라는 세월동안 거쳐 간 배우들만도 10명, 시즌이 4번 바뀌는 동안 한 시즌도 빠지지 않았던 송용진은 그의 분신 ‘쏭드윅’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는 <헤드윅>의 시작을 “안젤리나 졸리를 여자 친구로 맞이한 것 같은 그런 설렘”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의 시즌 2, 3은 지난 공연의 아쉬움으로 계속되었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2008년의 시즌 4, “이제야 스스로가 만족스럽고, 많은 공연에서 정말 헤드윅과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후회도 없고 여한도 없다”고 공연이 끝날 즈음에서야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다. 어느새 800회를 훌쩍 넘기고 900회가 가까운 공연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헤드윅이 되길 갈구하는 그에게 있어 <헤드윅>은 진정으로 애증의 대상이 아닐까. 특히나 2시간동안 그 흔한 장면전환도, 인터미션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무대를 책임져야만 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더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단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헤드윅만큼이나 공연 전 그 어떤 음식도 삼가는 그에게 <헤드윅>은 하루하루 “이건 정말 나랑 싸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전쟁터이다. “내 호흡이 한번 떨어지면 관객들의 몰입도 역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2시간동안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올리느라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전쟁터에서 얻는 상흔이 다른 작품에 비해 월등히 크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훈장도 그만큼 우월하다. 그런 애증이 4년이라는 세월을 지탱해준 힘이었던 모양이다.
송용진의 <헤드윅> 베스트 뮤지컬 넘버
뮤지컬은 다양한 배우들이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배우에 따라 이름도, 느낌도 다르게 마련이다. 배우들마다 다른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뮤지컬 넘버들이고, 각 배우들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 넘버들이 있다. <헤드윅>에 있어서 ‘The origin of love’는 오만석을 빼고 설명할 수 없으며, ‘Sugar Daddy’는 김다현을 빼고 설명할 수 없고, ‘Midnight radio’는 송용진을 빼고 설명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송용진하면 ‘Midnight radio’를 최고의 넘버로 꼽지만, 최근 그는 헤드윅버전의 ‘Wicked little town’을 가장 좋아한다. 헤드윅이 토미를 위해 불러주던 이 넘버는 ‘길 잃고 헤매는 당신, 따라와 나의 속삭임’이라는 마음을 울리는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송용진 역시 “그 곡의 영작가사들도 좋지만 의역된 한글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마음과 상황이 힘들 때 들으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곡인 것 같다”라고 고백한다. 스스로가 들으며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도 그 위로를 전달해주고 싶어서일까 그 곡을 부르는 동안만큼은 “의무감을 갖고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과도 최대한 아이컨텍을 많이 하려고 했다”고. 그 가사와 멜로디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건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올 한해, 배우의 인생보다 뮤지션으로 살고 싶다”
지난 11일 시즌4의 모든 헤드윅-이츠학들과 함께 광란의 <헤드윅> 마지막 공연을 마친 그는, 13일에 올라가는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마지막으로 지방의 ‘헤드헤즈’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그리고 이제 “올해는 배우의 인생보다 뮤지션으로 살고 싶다. 음악적으로 더 성장하는 해로 목표를 삼고 ‘해적’식구들과 멋진 음악을 해보고 싶다”라는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얘기한다. 1월 4일 같은 회사식구이자 뮤지컬배우인 이영미와 함께 <해적>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그는, 앞으로도 “드라마가 있는 콘서트”를 함께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뮤지컬 무대에서의 송용진은 보기 어려울까? <헤드윅>을 끝마치고 “이제는 쉼표를 한번 찍을 때가” 되어 더 이상의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제작사 쪽에도 진지하게 건의하고 있는데, 이영미씨가 헤드윅을 한다면 저는 헤드윅을 안 해도 이츠학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라고 가슴 설레는 꿈을 얘기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무대 위의 ‘송츠학’이 기다려진다. ‘이영미 헤드윅-송용진 이츠학’이라니, 이런 환상적인 페어가 있나! 애증이란, 그래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