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눈에 보이는 관념, Like
2014년에 초연된 창작뮤지컬 <더 데빌>은 그해 가장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 작품이었다. ‘난해하다’와 ‘트렌디하다’는 평가를 모두 받았지만, 1987년 뉴욕의 ‘블랙 먼데이’라는 생소한 사건과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했으나 모호하고 느슨한 서사, 끝없이 귀를 강하게 찌르는 록 음악은 <더 데빌>을 이해의 작품이라고 인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결국 3년만의 재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어떻게 쉽게 작품에 다가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 되었고, <더 데빌>은 “빛과 어둠은 항상 함께니 빛도 어둠도 인간의 선택”이라는 단 하나의 주제를 위해 캐릭터의 재조립과 편곡에 공을 들였다. 먼저 빛과 어둠 혹은 선과 악이라는 관념적인 단어는 X-White와 X-Black으로 분리됐다. 두 캐릭터는 명확하게 명명되었고, 블랙이 칼 같은 슈트와 헤어스타일로 등장한다면 화이트는 편안한 스웨터 차림으로 파우스트 곁을 맴돈다. 초연 당시 수시로 변화하는 X를 통해 끊임없는 인간의 번뇌와 배우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에 비하면, 지금의 방식이 종종 투박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대신 분리된 캐릭터 덕분에 선과 악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죄책감이나 쾌락 등의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감정을 더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미사곡을 차용하거나 하프시코드로 연주되는 화이트의 곡, 다수의 도약과 샤우팅 창법이 다수를 이루는 블랙의 음악은 그 자체로 대립이 되었다가 그 어떤 곡들보다도 더욱더 조화롭게 하나의 곡이 되기도 한다. 이로써 <더 데빌>은 ‘극과 극은 통한다’라는 문장을 음악만으로도 충실하게 증명해내는 작품이 되었다.
빛의 공해, Dislike
초연의 <더 데빌>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그로테스크한 뮤지컬이었다. 그레첸의 변화를 보여주는 몇몇 장면은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파격적이었고, 철골구조의 무대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차가웠으며, 빛보다는 어둠이 강하게 무대를 지배했다. 반면, 이번 재공연에서는 캐릭터의 재조립만큼이나 시각적인 디자인에서도 초연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무대는 거대한 대칭형 세트 위에 선 파우스트를 통해 ‘선택’이라는 주제의식에 또렷하게 집중하고, X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파우스트가 겪는 가파른 성공과 실패의 나락을 수많은 계단으로 구현해냈다. 특히 “어둠이 아닌 빛을 향해 가라”라는 가사에 집중한 듯 많은 색과 디자인의 조명이 무대와 인물, 심지어는 객석 위로까지 쏟아진다. 배우들은 종종 자신의 손 위로 떨어지는 빛을 담기도 하고, 조명은 음악의 선율에 맞춰 움직이거나 그레첸의 변화에 맞춰 백합을 비추기도 한다. 그러나 100분여 동안 조명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비추느라 강약이 없고, 끊임없는 무빙과 강한 조도는 의도에 비해 과하게 느껴져 이 모든 것이 빛의 공해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객석을 향해 쏟아지는 조명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도 같은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