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하게 존재하는 음악, Like
“자네 설마 죽음이 단조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K가 새로운 소나타의 작곡을 시작한 J에게 하는 충고는 실제 뮤지컬 <광염소나타>의 작곡가 다미로의 자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듯, <광염소나타>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김동인의 동명소설 속 죽음과 인간의 욕망에 얽힌 복잡한 감정을 다양한 멜로디의 음악으로 구현해낸다. 서정적인 멜로디 위로 얹히는 “깊게 패인 얼굴 주름 사이에는 빨간 물방울” 같은 가사가 보여주듯, 단조에서 벗어난 음악들은 익숙함과 신선한 아이러니를 동시에 던진다. 특히 J가 작곡해나가는 소나타의 다섯 악장들은 “모르모란도 조용히 속삭이듯이”, “스포르잔도 그 음을 특히 세게” 같은 음악용어를 가사의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캐릭터들의 상황과 감정을 음악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각각의 곡이 그리고자하는 방향성 역시 친절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정립하는 것도 음악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로 구성된 3중주 편성은 각각 예민한 J와 J를 너른 품으로 감싸는 S, J를 협박과 회유로 자극하는 K를 그려내고, 고통의 베토벤과 천재 모차르트에 비유한 J와 S의 내밀한 관계는 연탄곡을 통해 더욱 부각되는 식이다. <광염소나타>는 ‘음악’ 자체를 소재로 내세우고 서사적 상황과 인물의 감정적 기승전결, 관계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음악으로 표현해냄으로써 소설이라는 지면을 넘어 이 작품이 왜 ‘뮤지컬’인지를 증명한다. 음악적으로만 봤을 때 오케스트라 편성의 대극장 공연이 기대되는 흔치않은 창작뮤지컬.
‘아티스트의 고뇌’라는 소재의 높은 피로도, Dislike
<광염소나타>는 ‘음악적 영감을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른 음악가’라는 동명소설의 뼈대에 많은 살을 붙인다. 그가 만들었을 법한 음악을 재현하고 그가 받았을 법한 음악적 영감의 상황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뮤지컬’로서 장르적 성과를 일궈낸다. 여기에 작품은 1인칭 서술의 형식상 휘발된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상상하고, S를 새롭게 등장시킴으로써 세 인물 사이에 긴장과 욕망의 트라이앵글을 만든다. 상상 이상의 곡을 써내는 J를 바라보는 선배 뮤지션 K의 기대와 불안, 여유롭게 “음악에 영감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S를 바라보는 J의 열등감과 분노,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J를 향한 S의 안타까움. 이를 통해 뮤지컬은 ‘작곡’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넘어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제법 성공한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아티스트의 고뇌’라는 소재는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한 흐름이 될 정도로 많아졌고, 스릴러라는 장르 역시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 흐름 안에서 <광염소나타>가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인물의 관계에서 <라흐마니노프>나 <쓰릴미> 같은 몇몇 작품이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광염소나타>의 ‘음악’은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과의 사이에서 변별성을 갖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