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아이들, Like
140분의 러닝타임 중 마틸다를 포함한 아홉 명의 어린이가 무대에 체류하는 시간. <마틸다>는 어린이 자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체류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가장 큰 줄거리는 부모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는 마틸다의 성장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성장한 마틸다가 또래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함께 주목한다. 나이젤은 ‘기면증’을 이용한 마틸다의 거짓말로 벌을 피하고, 브루스는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벌로 내려진 거대 케이크를 모두 먹어치운다. 마틸다의 뇌가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를 궁금해하던 라벤더 역시 컵에 도롱뇽을 넣어 트런치불을 골탕먹인다. 어른들의 억압과 폭력에 복수하는 아이들의 작은 서사들이 모여 <마틸다>는 마틸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어린이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여기까지는 원작자 로알드 달의 유산이다. 뮤지컬 <마틸다>는 무대 위에 직접 어린이 배우들을 세워 원작에 대한 존경과 뮤지컬로서의 존재의 이유를 설명한다. 대다수의 노래는 이들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고, 어린이 배우들은 소소한 무대 전환도 함께한다. 아이들은 성인 못지않게 소리를 지르고, 뛰고, 춤추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장면들을 넘치는 에너지로 책임진다. 그 모든 것은 관객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며, 이를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주제가 더욱 선명해지는 셈이다. 마틸다의 부모나 허니 선생님, 트런치불 교장 같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 역시 어린이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로서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어린이들에게 비추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린이를 독립적인 주체로 바라보는 원작자의 시선과 세심한 RSC의 태도가 만들어낸 기적.
아쉬운 가사 전달력, Dislike
<마틸다>는 수많은 알파벳으로 장식된 프로시니엄 무대, 마틸다의 미스터리한 능력을 암시하는 듯한 푸르스름한 조명, 블록과 그네를 이용한 다이내믹한 안무 등 볼거리가 많은 뮤지컬로도 유명하다. 레플리카로 제작되는 만큼 국내 관객들도 <마틸다>의 이런 시각적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리지널의 결과이며, 한국 프로덕션의 성패는 얼마나 한국어로 이 정서를 잘 옮겨냈느냐에 있다. 연민과 즐거움을 동시에 담은 <마틸다>는 장르를 따지면 블랙코미디고, 팀 민친의 음악은 이 매력을 가장 크게 부각하는 요소다. 마틸다의 탄생에 감격해 부르는 의사의 가스펠과 절망한 미세스 웜우드의 표정은 묘하게 비틀려서 웃음을 자아낸다. 소심하지만 마틸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안절부절하는 허니 선생님의 수다스러운 넘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언어’ 자체가 중요한 작품인만큼 가사에는 수많은 라임이 존재하고, 캐릭터의 성격과 지적수준을 담아내는 가사들도 있다. 비영어권의 첫 번째 가사는 예상보다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지만, 문제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휘몰아치는 멜로디에 빼곡하게 들어찬 가사의 전달력에 있었다. 특히 경력이 길지 않은 어린이 배우들의 비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달력의 문제는 더 도드라진다. 트런치불을 학교에서 쫓아낸 후 아이들이 부르는 ‘Revolting Children’이 대표적이다. 물론 음악과 아이들의 에너지만으로도 감정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굳이 한국 프로덕션을 볼 필요가 없다. <마틸다>가 어떤 창작물보다도 아이들 스스로 부당함에 맞서 싸워 결과를 만드는 데 집중한 작품이라 약한 전달력이 더없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