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에 가까운 댄스, Like
<플래시댄스>는 1983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인 만큼 원작에 충실하다. 주인공 알렉스는 춤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 없지만 본능으로 춤을 추고, 그의 재능을 알아 본 누군가는 그를 후원한다. 삶을 위해 낮에는 용접공으로 일하지만 밤에는 클럽 무대에서 춤을 추는 댄서.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알렉스의 몸 위로 쏟아지는 워터 신도 그대로다. 영화는 춤을 소재로 한 만큼 발레부터 스트리트댄스, 재즈댄스까지 다양한 춤이 펼쳐졌다. 뮤지컬 역시 댄서가 되고 싶은 알렉스가 홀로 춤을 연습하고, 클럽 무대에 서고, 최종 오디션을 치루는 과정을 독무로 찬찬히 보여준다. 하지만 뮤지컬은 여기에 다양한 군무를 등장시킴으로써 형식상 솔로가 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영화와 다른 노선을 간다. 알렉스가 삶의 모든 것에서 음악과 춤을 발견하듯 작업장에서의 노동과정이나 거리의 댄서들, 클럽의 달뜬 분위기 역시 코러스 배우들의 군무로 구체화된다. 수없이 등장하는 리프팅으로 기예에 가까운 안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시원시원하고 유연한 피지컬로 구현되는 다채로운 동작들은 <플래시댄스>를 ‘보는 뮤지컬’로 만들어내는 가장 큰 힘이다.
작품에 넘치는 거대한 공연장, Dislike
뮤지컬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각적 인상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이브로 진행되는 뮤지컬이 영화처럼 인상적인 댄스신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뮤지컬이 알렉스 외에도 닉과 글로리아, 지미 등 주변인물의 변화에도 주목하는 이유다. 그저 부잣집 도련님에 불과하던 닉은 노동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행동하는 인물이 되었고, 글로리아와 지미는 애타게 원하던 꿈이 좌절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각 인물들이 갖는 서사의 깊이가 깊지는 않다. 하지만 뮤지컬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모두 주목하며 이야기를 넓게 펼쳐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이 서사의 중심에 있는 알렉스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의 <플래시댄스>가 그 감정을 공감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영어로 진행되는 내한공연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로 기능하지만, 이 작품이 3,000석 규모의 거대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는 점도 그렇다. 접혔다 펼쳐지며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동형 세트는 투어 공연에 적합한 구성이지만, 넓은 무대를 채우는 데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이 여백은 20명의 배우가 쉴 새 없이 무대 곳곳을 누비며 메꾸는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에너지는 분산되기 마련이고, 가로로 넓게 퍼진 객석에서 관객의 시선이 하나로 집중되는 것 역시 어렵다. 기예에 가까운 안무를 보면서도 경이로움보다 안타까움이 먼저 고개를 드는 것도 이 같은 한계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