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굵은 무대의 힘, Like
러시아의 사교계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예상대로 화려하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우연히 만나는 기차역은 붉은 조명과 굉음이 휩싸인 공간으로 구현되어 그들의 미래를 암시한다. 레빈이 키티에게 청혼하는 아이스링크장은 러시아의 아이스 발레를 연상케하는 실력 좋은 코러스 배우들의 앙상블로 공간감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무도회로 이어지면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한 드레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실키한 소재와 넓은 폭의 의상들은 발레를 베이스로 한 안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다양한 턴들은 페티코트 없이도 무대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동안 소개된 많은 유럽 사극 뮤지컬과 <안나 카레니나>는 ‘화려함’이라는 결과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익숙함을 깨고 새로운 과정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공간을 그대로 구현한 대형 세트 대신 <안나 카레니나>는 몇 개의 기둥과 계단, 8개의 LED 패널, 실사에 가까운 영상으로 모든 공간을 만들어낸다. 굵은 눈발이 날리는 기차역, 광활한 들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성에 낀 유리창. 선이 굵고 솔직한 러시아의 특징이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선 듯 익숙한 무대로 구현되는 셈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앗아간 고전, Dislike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에 대한 비판과 당시의 문화예술, 다양한 인물의 심리를 그려낸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거대한 대작을 러닝타임이 제한된 별개의 매체로 옮긴다면 선택과 집중은 필수적이며 대부분은 안나의 사랑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뮤지컬에서도 안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다.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는 아내에게 품위를 지키라며 핀잔을 주거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며 경고한다. 사교계 사람들은 그의 등장을 둘러싸고 수군거리거나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가십거리로 소비하기에만 바쁘다. 브론스키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인지한 후에도 안나가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나”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대변한다. 하지만 안나는 엄숙하지만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자신의 행동이 죄가 아님을 말하고, 브론스키를 향한 관심과 사랑도 숨기지 않는다. 고민 끝에 선택한 자신의 행동에 그 어떤 주저함도 없는 안나의 캐릭터는 극 초반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비극으로 치닫는 이후의 삶이다. 달라진 처지에도 안나의 구체적인 심리 변화보다는 그에게서 멀어진 알렉세이와 브론스키를 위한 변명의 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한 과정이 안나의 죽음이라는 결말을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감정이 배제되면 관객은 자신을 억압했던 삶을 벗어나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인물을 쉽게 지우고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에만 집중하게 된다. 원작의 정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관객을 만나면서 시대와 동떨어진 정서를 고스란히 지키는 것이 과연 미덕일 수 있을까. 고전이라고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