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데레우스>, 우주의 낭만을 노래하다 (스테이지톡)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부터 뮤지컬 <최후진술>과 <시데레우스>까지, 최근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갈릴레오가 기존의 세계관을 흔들고 새로운 진실을 발견한 인물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가치와 오래된 가치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급변하는 21세기와의 접점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각 작품들은 그의 어떤 지점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을 갖는다. <시데레우스> 역시 궁극적으로는 지동설을 주장해 종교재판을 받는 갈릴레오의 생애를 다룬다. 그러나 ‘별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서 알 수 있듯, 뮤지컬은 진실을 찾아가는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시작이 별을 향한 낭만과 과학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무대세트다. 대칭형의 무대는 같은 듯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영역을 만든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는 유성우처럼 표현된다. 책과 조명을 이용해 태양계 궤도를 그리는 장면은 두 사람의 연구를 상징함과 동시에 과학적 개념을 탁월하게 시각화해낸다. “꼬리를 달고 떨어지는 유성우가 너무 예뻐서 편지를 썼다”는 가사나 탁 트인 공간에서 별을 바라보던 장면을 재현하는 부감샷 연출은 감성을 자극해 관객의 상상을 돕는다. 여기에 경쾌하게 흐르는 음악이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듯 들뜬 이들의 감정을 담아낸다. 과학을 다루되 딱딱한 이론으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무언가를 깊게 사랑한 이들의 감정에 집중하는 셈이다.
이러한 접근은 아마도 각자의 공간에서 지동설을 증명한 두 사람의 연구가 자칫 잘못하면 단조롭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편지는 둘을 잇는 수단이지만, 결국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성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대신 작품은 각자의 영역에서 편지를 쓰고 읽는 액션과 리액션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구축해나간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정욱진은 케플러의 순수한 흥분을 충실히 담아낸다. 그의 에너지를 받은 고영빈은 우아하면서도 유연하게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내려 애쓴다. 마리아는 갈릴레오의 위험한 연구를 바라보는 당시의 분위기를 기능적으로 설명하지만, 그 역시 편지를 통해 지난 세월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수녀로서 주관을 확립해나간다.
실존 인물의 삶을 작품으로 만들 때 인물의 감정보다 사건이 앞설 때가 많다.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는 방식은 때때로 21세기 관객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시데레우스>는 사건과 시대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대신 보편의 감정에 최대한 집중함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 과정 끝에 오히려 뚜렷해지는 것은 ‘어두운 거짓 속에서도 진실에 다가가는 신념’이라는 주제다. 400년 전의 인물을 지금 소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