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누군가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 미모나 화술 혹은 화려한 몸짓 등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떠올리지만, 그와 반대로 갖지 못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부단히도 달려가는 그 치열한 매력. 그 치열함이야 말로 아이러니하게도 갖지 못했을 때서야 가질 수 있는 미묘한 매력이다. 그리고 조휘는 그런 결핍이 주는 치열함을 그 어떤 매력보다도 가장 큰 무기로 가진 사람이다. 물론 학교와 전공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뮤지컬배우라고 했을 때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한예종, 서울예대 혹은 연극영화과, 성악과라는 범주와는 한참 동떨어진 고려대 체육교육과 출신의 배우이다. 체계적인 연기에 대한 지침도, 노래에 대한 제대로 된 레슨도 없이 만들어낸 목소리에 대해서도 “2년간 독하게 혼자 CD를 들으며 수백 번 따라 하다 보니 잘하게 되더라”며 담담히 회상할 뿐이다. 하지만, “특별히 끌어주는 선배도 라인도 없이” 스스로 약속하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7년간의 세월은 그를 단단하고 치열한 사람으로 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 기나긴 터널 끝에는 뮤지컬 <돈 주앙>의 돈 카를로스가 있었다. 당시 조휘가 가진 가장 유명했던 커리어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이었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던 그는 <돈 주앙>에 출연하는 주요 배우들 중에서 기대감이 가장 낮은 인물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멀티맨이 무슨”이라는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받으면서도, “관객들의 ‘그럴 줄 알았다’는 평가를 그대로 뒤집어 버리고 싶었”던 그는 결국 작품이 시작되고 난 이후 <돈 주앙> 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언제나 곁에 있어줄것만 같은 믿음직한 친구 돈 카를로스, 그게 바로 조휘가 새로 얻은 이름이었다. 그랬던 그가 뮤지컬 <클레오파트라>(KLEOPATRA)를 통해 시저의 강력했던 믿음마저 배신하고 “상사의 여자”를 사랑한 안토니우스가 되어 돌아왔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는 약 20여년에 걸친 로마와 이집트 간의 정치적 갈등과 시저,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사랑을 그리는 체코뮤지컬이다. 이집트 벽화 한 면을 그대로 올린 듯한 세트, 안무와 함께 40여곡에 달하는 클래식한 음악이 웅장함을 더해준다. 극중 조휘는 시저 휘하의 장군이었지만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하게 되는 안토니우스를 맡았다.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지극히 정치적이며 연인인 클레오파트라조차 그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권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반해, 안토니우스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안토니우스는 결혼을 2번이나 하고도 시저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고, 기록으로만 보면 굉장히 나쁜 사람이에요. 하지만 저는 안토니우스를 강인하고 터프한 장군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순수함에 초점을 두고 그것으로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데뷔 후 처음으로 멜로연기를 하는 거라서 그런지 사랑이라는 부분에 욕심이 큰 것 같아요. (웃음)”
7월 12일,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면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돈 주앙>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쁜 남자 돈 주앙의 외로움까지 모두 품었던 돈 카를로스를 벗으면 <영웅>을 통해 오랜만에 한국인 조도선이 된다. 올 9월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되는 창작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역으로 캐스팅 된 류정한, 정성화와 <명성황후>를 만들어 세계무대에도 선보인 윤호진 연출가의 참여로 많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극중 조휘가 맡은 조도선은 안중근과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독립운동가로, 과묵하며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가진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다. “비중에 상관없이 좋은 선배들과 스태프들을 만나 배우는 입장으로 들어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가 또 몇 개의 계단을 뛰어넘을지 기대가 된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기나긴 세월을 딛고, 팬들에게 “왜 그렇게 비싼 작품만 하냐”고 푸념 섞인 원망을 들어도 이제는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치열함과 함께 여유라는 매력도 만들기 시작했나 싶었더니 어김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예전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고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지’라고 했지만, 무대에서의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버리면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에겐 저 자신이 교과서니까요.”
‘별이 되어 사라지네’
조휘가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정형화되지 않은 신선한 목소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안토니우스의 솔로곡이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사망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접하고 자살에 이른다. 전작에 이어 노래로 모든 스토리와 감정을 전달하는 작품인 만큼, 자살하는 순간에도 그녀를 향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이 곡을 부를 때마다 매일 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메이크업도 다 지워지니까 분장팀에서 싫어하죠. (웃음) 특히 이 곡이 <클레오파트라> 남자 캐릭터들의 노래 중에 가장 높은데,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보니 이렇게 노래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이 어려워요. 다행히 틀에 박혀있지 않다며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죠. 노래 안에서 드라마를 어떻게 풀어야 될지 고민 중이고, 그 고민들이 결실이 되어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