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궁>을 위한 나침반 (텐아시아)

만화와 드라마의 성공. 2010년 <궁>은 그 바탕 위에 유노윤호를 앞세워 뮤지컬을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초연의 <궁>은 드라마를 무대에 ‘재현’하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드라마에서 주목받았던 신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초연과 다수의 지방공연, 일본 교토 공연을 마치고 서울에 다시 나타난 2011년의 <궁>은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에 조금 가까워졌다. 10월 9일 서울공연을 마치고 12월 도쿄공연의 준비를 시작할 <궁>이 달라진 점과, 그럼에도 여전히 변화해야 되는 지점을 살펴봤다.
우리 <궁>이 달라졌어요 지수 ★★☆
큰 변화는 초연 당시 가장 문제로 지적되었던 스토리에 있다. 드라마를 집필했던 인은아 작가 대신 다수의 뮤지컬 경험을 지닌 박인선 연출의 각색으로 드라마의 ‘무대화’가 시작됐다. 평범한 여고생과 황태자의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위해 기능적으로 소구되는 인물과 설정은 과감히 삭제됐다. 효린의 부재는 도리어 신-채경-율의 삼각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고, 소년소녀가장돕기 축제 준비위원장으로 설정한 채경은 초연 당시 과도하게 설정된 ‘힙합소녀’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인물들의 관계와 스토리의 구조가 명확해지면서 신과 신 사이의 뮤지컬넘버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됐고, 궁과 채경의 집을 한 무대에 올려 그들의 혼담을 교차로 보여주는 방식이나 객석에서 무대로 이어지는 동선 등의 연출은 공간적, 정서적 상황을 관객에게 좀 더 쉽고 빠르게 전달했다. 제법 많은 수의 코러스들이 뿜어내는 안무와 무대도 제 몫을 뽐낼 준비를 했다.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
성장판에 각인하세요 지수 ★★★
스토리의 기둥이 나름 세워졌지만, 여전히 <궁>은 ‘보여주기’에 대한 강박이 있다. 채경의 학교에서는 청소도구로 난타를 하고, 축제에서는 태권도를 이용한 차력쇼가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신과 율 모두 채경을 위해 깜짝 공연을 한다. 하지만 다수의 퍼포먼스 중 스토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이후 자질논란에 휩싸이는 신의 공연뿐이다. 다양성을 좇기 보다는 핵심적인 신의 공연에 더 많은 시간과 질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국민 아이돌’이라는 이신의 캐릭터를 보여주기에도 이 장면만한 것이 없다. 또한 <궁>은 <그리스>나 <헤어 스프레이>와 같은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물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지킬앤하이드> 같은 극적인 변화도, <맨 오브 라만차>와 같은 사유의 시간도, <미스 사이공>처럼 국가와 시대를 뛰어 넘는 거대한 러브스토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은 언급한 작품들과 같이 16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으로 진행된다. 2막, 관객의 집중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제 <궁>이 시작해야 할 두 번째 스텝은 지루해지지 않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