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경로에서 살짝 벗어났을 때 우리는 새로움을 발견한다. 가지 않은 길이 주는 두려움이 이 희열을 배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뮤지컬 <썸씽로튼>은 이러한 희열로 150분을 가득 채운다.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탄생했다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연극이 대세이던 시절, 대사를 하다 느닷없이 노래를 부른다는 기묘한 형식은 그 자체로 기존의 틀을 흔든다. 닉 바텀의 이러한 시도를 모두가 비웃지만, 괜찮다. <썸씽로튼>이 모든 시도와 변화가 허용되는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비틀기와 일탈의 매력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닉이 ‘미래의 희망’으로 뮤지컬을 발견하는 ‘A musical’ 장면이다. 닉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인 토마스이며, ‘A musical’은 9분간 펼쳐지는 뮤지컬의 조각모음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렌트>의 대표적인 멜로디 위로 <브로드웨이 42번가>와 <시카고>의 익숙한 안무가 더해진다. <송 앤 댄스>는 제목 그대로 가사로 등장하고, <코러스 라인>의 소품이 시대를 반영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A musical’은 그 자체로 ‘뮤지컬 작법서’이기도 하다. 왜 각 인물들이 말을 하다 노래를 하는지, 댄스브레이크는 왜 등장하는지, 왜 “주구장창 한 음만 내”는지 <썸씽로튼>은 설명한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의 어떤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 이러한 패러디는 음악으로 서사와 감정을 표현해내는 뮤지컬이 형식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되는지를 보여준다. 뮤지컬을 향한 크리에이터들의 열렬한 애정과 자부심을 담은 이 곡은 150분간 계속 될 ‘비틀기’의 예고인 셈이다.
이러한 비틀기가 인물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썸씽로튼>은 21세기에도 근엄하고 진지하게 추앙받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록스타로 만든다. 그는 극중 인물 중 유일하게 록 사운드에 맞춰 노래하며,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자신에게 취해 있는 듯한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다소 과장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썸씽로튼>은 동시대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생동감 넘치는 인물로 그려냄과 동시에 그를 새 시대를 열어낸 인물로서 존중한다. 또한 엄격한 도덕과 향락의 제한을 외치지만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적 의미를 간파하고 발언하는 청교도 목사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기도 한다.
국내에 소개된 브로드웨이산 코미디 뮤지컬들은 대체로 지역색이 반영된 경우가 많아 디테일한 각색에도 코미디의 포인트가 빗나갈 때가 많았다. <썸씽로튼> 역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이 익숙하다면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바텀 형제가 토마스의 말만 듣고 오믈렛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이 다양한 소재를 비틀며 최대한 보편의 코미디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썸씽로튼>은 엔터테인먼트를 주요한 가치로 삼는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쇼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할까 봐 불안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닉은 질투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이들을 통해 작품은 ‘Be yourself’를 외치고, 너무 진지해서 민망하게 느껴질 진심도 도리어 가벼운 포장 덕에 미소와 함께 마음에 남는다. 경로재탐색은 설렘을 가져오고, 설렘은 언제나 가능성을 확장한다. <썸씽로튼>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