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미장센, Like
국내 뮤지컬시장에서 이지나 연출만큼 작품의 명확한 노선을 세련되게 보여주는 연출가도 드물다. 그의 장기는 혼란의 조선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1884년 김옥균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하기까지 약 25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들은 ‘역사 느와르’라는 작품의 콘셉트에 맞춰 오래된 흑백사진이 영사되는 듯한 잿빛 미장센으로 구현됐다. 무채색의 슈트와 은은한 빛깔의 한복은 적절히 미스매치 되어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매력을 그려내고, 조도가 낮은 조명은 혼란의 시대를 지배하는 어두운 정서를 담당한다. 총과 칼을 이용한 액션이 슬로우 모션, 다양한 군무와 함께 작품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착시를 이용한 영상은 간단하되 효과적으로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특히 여러 대도구를 이용해 무대를 분할하거나 펼쳐냄으로써 작품에 리듬감과 몰입도를 높이는 그의 연출기법은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한 <곤 투모로우>와 좋은 짝패를 이룬다. ‘독립’이라는 작품의 소재상 자칫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지만, 그는 나라를 향한 세 남자의 각기 다른 고뇌를 부각하며 지금 관객과의 접점을 찾아낸다. 무대 양쪽으로 설치된 여러 겹의 기둥과 상·하수를 오가는 구조물들은 이지나 연출이 참여한 뮤지컬 <바람의 나라>,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본 관객들이라면 낯설지 않은 방식이다. 그러나 <곤 투모로우>는 같은 재료를 이용해 전혀 다른 색을 발견해내며 ‘왜 이지나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린다.
느슨한 개연성, Dislike
20여 년 전 발표된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의 해체와 재조립은 2016년의 <곤 투모로우>에게 필수요소였다. 연출과 함께 각색도 담당한 이지나 연출은 혁명가로서의 김옥균에 집중한 원작 대신 홍종우를 전면에 세운다. 국가의 외면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이 나라에 미련없습니다”라며 조선을 떠나 프랑스에서 새 삶을 찾고자 했던 홍종우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대체 뭡니까?”라는 그의 질문이 낯설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역사적 판단을 뒤로 하고 봤을 때, 국가와 자신을 분리해 움직이고 어떠한 계기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확인하며 결국 국가에 의해 희생당하는 홍종우의 인생은 가장 보편의 시민이 갖게 되는 변화와도 같다. 특히 적이자 동지였던 김옥균을 통한 그의 각성은 <곤 투모로우>를 비극이면서도 희극으로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나 깨나 왕 걱정에 죽어서도 나라 걱정뿐인 김옥균의 일방통행과 많은 매체에서 허울뿐인 왕으로 그려졌던 고종의 김옥균에 대한 복수 등은 그 연유가 단편적이거나 찾아내기 쉽지 않다. 홍종우를 통해 보편적 다수의 변화와 연대를 그리고자 했다면, 그를 변화시키는 김옥균과 그를 이용하는 고종이 탄탄하게 뒤를 받쳐줘야 했다. 극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와는 달리 서사의 정교함이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