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화문연가>, 그리움의 송가 (텐아시아)

흰 눈 나리는 광화문거리에 한 남자가 ‘옛사랑’을 부르고 있다. 상훈(송창의)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최루탄으로 흐려진 나날을 음악과 함께 보내는 작곡가다. 반면 그가 아끼는 후배 현우(김무열)는 최루탄에 직접 몸을 던지는 사람이다. 다른 성격만큼이나 다른 방식으로 두 사람은 한 여자, 여주(리사)를 사랑한다. 상훈은 말 대신 수많은 노래에 마음을 숨기고, 현우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여주는 현우 곁에 남았다. 그리고, 상훈은 그런 여주를 보내주고 그 고독과 그리움을 또 노래에 아로새긴다.
나는 이영훈이다 7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이 작품이 故 이영훈 작곡가라는 시를 위한 시, 트리뷰트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래야만이 21세기에는 얼핏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나무 같은 상훈의 사랑이, 설명이 아닌 상징의 표현방식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광화문연가>에는 삼각 러브스토리와 성장담, 80년대 현대사가 그려진다. 그리고 이 삼색 구슬을 한 줄로 꿰어내는 것이 바로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빗속으로’와 같은 이영훈의 노래다. 그래서 스토리가 얼마나 매끄럽냐는 캐릭터의 상황과 감정이 얼마나 가사와 맞닿아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큼의 크기로 관객에게 전달되는가에 달려있다.
여주를 사랑하게 되는 상훈과 현우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동시에 ‘소녀’를 부른다. 하지만 끝까지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를 외치는 것은 상훈이다. 2중창이 독창으로 변화하면서 노래는 상훈이자 곧 이영훈인 그의 소년 같은 성격을 만들어낸다. ‘시를 위한 시’ 역시 투병중인 현재의 상훈(박정환)이 “날 위해 울지 말아요”를 노래함으로 이영훈의 유언을 대신한다. 그의 곡 대부분이 이별이라는 한정적 감정을 제시하지만, <광화문연가>는 그 안에 숨겨진 다층적 의미를 상황에 걸맞는 편곡으로 스토리의 흐름과 캐릭터의 성격을 잡아간다. 하지만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18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에도 불구하고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극장은 섬세한 감정선을 단박에 알아채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몇 차례의 리메이크로 젊은 세대에까지 널리 알려진 ‘깊은 밤을 날아서’를 투쟁곡으로 만든 설정은 연출의도라해도 관객을 극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영훈의 음악을 동시대로 즐겨온 중년관객들은 <광화문연가>를 통해 자신의 80년대를 복기하며 그리움의 정서를 가져온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들은 답답하기만한 상훈의 사랑에도, 민주화를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들에게도 쉽게 공감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할 뿐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이 시대의 히트곡으로 추억을 곱씹는 것에 그치며 아쉬움을 낳았다. 하지만 단일 작곡가의 곡으로 이루어진 <광화문연가>는 그가 가사에 주로 등장시켰던 눈과 꽃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그의 흔적을 곳곳에 남겼다. 음표와 오선지로 가로수와 광화문 돌담길을 형상화한 무대에 다양한 이야기를 비벼내며 기존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간 것은 맞다. 2030에 치우쳐있는 관객층을 늘리고, 이영훈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을 소개하는 것에 목표를 세웠다면 지금의 <광화문연가>는 성공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매년 새로운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는 좀 더 공감의 포인트가 필요하다. 공연은 4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