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할까?”(신지호) “‘리베르 탱고’ 하자”(KoN) 사진촬영을 위해 부탁한 연주가 시작되기까지 그들이 나눈 대화는 단 두 마디뿐이었다. 단출한 대화 후 격정적인 신지호의 피아노 선율과 발구름 위로 애절하면서도 화려한 KoN의 바이올린이 얹히며 공간의 공기를 바꿔놓는 1분 30초짜리 천국이 펼쳐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순식간에 흘러나온 화려한 연주보다 정직한 눈빛과 마음으로 음표를 나누던 순간에 더욱 빛이 났다. 그리고 액터-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의 이스마엘과 퀴퀘그로 지난 1년간 연기와 노래, 안무와 연주를 함께 해온 두 사람의 호흡은 다음 인터뷰에서도 도드라졌다. 생애 첫 연기를 향한 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고, 질문지에 적힌 ‘애증’이라는 단어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미소는 더없이 맑았다. 오히려 신지호와 KoN에게는 닉쿤 닮은 피아니스트, 한국 최초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저 그들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 웃고 찡해졌던 순간을 여기에 묻는다.
지호 씨는 며칠 전 팔에 화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괜찮나.
신지호: 화상은 다 나았다. 음악 하는 분 중에는 역기는커녕 리모컨도 안 드는 분들도 계신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걸 신경 안 쓴다. 주변에서는 손 보험도 들라고 하지만 그 정도까지 해야 되나 싶은 거다. (웃음) 그리고 좀 다쳐보기도 해야 된다. 하하하. 지금은 바빠서 잘 못하지만 웨이트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 볼링도 좋아한다. (웃음)
‘닉쿤 닮은 피아니스트’로 소개되기도 했고,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느껴지는 서정성 때문에 운동은 절대 안 할 것처럼 보이는데!
신지호: 그런 오해들이 좀 많다. 집에서 책만 읽고 케이크 먹고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닭발, 꼼장어, 껍데기, 곱창 이런 종류다. 술도 소주나 막걸리 좋아하고. 그리고 중3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내내 혼자 지내다 보니까 한국적인 것에 대한 로망이 좀 많다. 병뚜껑 매달려 있는 포장마차 같은 거. 하하하.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는 누나 형들이랑 자주 다니고. 또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활동적이라서 가만히 집에 있는 걸 못한다. 피아노랑 안 어울리긴 하네. 하하하
최근엔 연주 외에도 연기, 노래까지 해야 하는 뮤지컬 <모비딕>에 출연 중이다. 공연도 어느새 반을 지났는데, 연주만 하던 지난 시간과는 어떤 다른 점이 있었나.
신지호: 사실 체력인 부분이 가장 힘든 것 같다. 피아노 연주만 해도 땀이 너무 많이 나는데, 거기에 (목소리와 동그란 눈이 점점 커지며) 연기, 안무, 노래까지. 너무 힘들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원래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에 연주까지 해야 됐으니까. (이)일근이 형이랑 나는 원캐스트라 1주일에 거의 8번 이상의 공연을 한다. 그동안 개인 콘서트를 해도 3일 이상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일단 시작하고 나니까 익숙해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 2회 공연은 너무 힘들다. 거기다 이스마엘은 마지막에 울면서 끝나니까.
KoN: 사실 원래 굉장히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공연에 맞춰서 기상시간도, 먹는 것도 알아서 잘 조절해야 되니까. 거기다 초반 1, 2주차에는 콜타임도 빠르다 보니 거의 일어나자마자 나와야 하는 상태였다. 거의 고등학생 때나 했던 생활을 다시 한 거다.
<모비딕>은 올 7월 본공연을 하기까지 1년 이상의 긴 제작과정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다수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작품을 발전시켜왔는데, 말이 좋아 발전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1년의 시간을 버틴 격이기도 하다. 굉장한 애증의 대상일 것 같다.
신지호: 진짜 미워 죽겠으면서도 사랑하는 게 애증이니까. (웃음) 정말 그랬던 것 같다.
KoN: 준비하는 동안 너무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다가도 무대에 올라가거나 연습 도중 합이 잘 맞을 때는 굉장히 행복했다. 애증이라는 것이 사실 감정의 극과 극을 왔다갔다하는 건데 정말 널뛰기를 많이 했다. 애가 강할 때는 너무 좋다고 난리 치고, 그러다 증이 많아지면 미치겠어, 안 해 막 이러고! 지금 공연장이 100석이 조금 넘는데 이젠 그것도 좀 아쉽다. 계속 꽉 차니까 200석도 채울 수 있을 것 같고. 하하하
신지호: 연강홀 정도는 돼야지. (웃음)
KoN: 물론 아쉬운 부분에 대한 지적도 많지만, 다행스럽게도 여기까지 오면서 들은 평의 99%가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보람이 있다.
제작기간 동안 다수의 배우가 거쳐 가기도 했다. 아이돌 기획사에서 연습생들이 계속 나가는 걸 지켜보는 장수 연습생과도 비슷한 느낌인데,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는 그 기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나.
KoN: (신)지호랑 나는 이 작품의 각본이 완성되기 전 기획단계에서부터 같이 시작했다. 우리 둘은 대체가 안 되는 상황이라 계속 갈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런데 <모비딕>은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서 연주가 가능한 뮤지션을 뽑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은 메인 잡이 뮤지션이고 연기로 외도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힘든 준비과정 속에서 마음잡는 게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나 지호는 예전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모비딕>이 아예 동떨어진 작품은 아니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 해서 적극적으로 임했던 거다. 그런데 1년간 쉽지 않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다. (웃음)
신지호: 하지만 그 기간을 거치면서 다들 약간 사촌 같은 느낌이 생겼다.
1년 동안 계속 연습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워크숍도 몇 개월의 텀이 있었고. 본인들도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조절했나.
KoN: 버퍼링이 많이 걸렸다. 올 2월에 두산아트랩 워크숍 공연을 하고 3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협연이 있었다. 그건 순수하게 바이올리니스트로의 협연이었고, 거기서의 모든 액션은 사운드를 위한 액션이다. 그런데 한 달간 <모비딕> 연습을 하고 갔더니 액션이 너무 커진 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섬세하게 퀄리티에 신경을 써야 되는데 활도 떨리고 노이즈도 나서 협연 준비하면서 1주일을 완전 헤맸다. 협연 날에 가까워지면서 연주자 모드로 전환이 됐는데, 끝나고 나니까 또 송콘서트 한다고 해서 <모비딕>으로 가고. 넋 놓고 있으면 <모비딕>에서 클래식 연주하고 그렇게 되는 상황이었었다. (웃음)
<모비딕>을 처음 연습하던 날 어땠는지 궁금하다. (웃음)
KoN: 크흐흐흐흐흐흐흐.
신지호: 제일 처음? 에-휴. 되게 막막했다. 사실 연기나 노래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주눅이 들었다. 피아노야 원래 치던 거니까 그래도 괜찮겠지 했는데 음악도 정말 너무 어려웠다. 다들 이 작품을 볼 때 연주는 당연히 잘할 거라고 예상하고 본다. 그래서 더 부담이 많이 갔고, 연주마저도 나에겐 도전이었다. 너무 막막했고, 슬펐고, 자신감이 너무 떨어졌었다. 내가 굳이 뮤지컬에 도전한다고 해서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나, 자존감도 굉장히 낮아졌었다.
KoN: 초반에는 정말 뮤지션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들 생소했다. 그때는 연기하던 (황)건이도 없었을 때고, 조용신 연출님도 번역이나 평론만 하시다가 연출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디렉션을 주시기보다는 다 보시고 평 한마디 하는 그런 상태였다. 모두에게 도전이었던 셈이다. 작곡을 한 정예경 음악감독이 학교 후배라서 곡을 절대 쉽게 안 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예경이가 “오빤 할 수 있잖아” 하니까 또 혹해서 “어, 알았어!” 이러고. 크하하하하.
신지호: 그래, 진짜 어려웠어. 처음에 음악을 들었을 때는 너무 내 스타일이라서 충격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음악은 너무 좋은데 이걸 어떻게 해! 라고 했었다. 노래도 그래! 노래 음역대도 너무 넓다. 굉장히 저음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고음으로 훅 치고 나가고.
KoN: 고음이 힘들어서 키를 조절했더니 시작이 완전 저음 저 바닥이고! 음악이 굉장히 아름다운데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물 흐르듯 흐르다 보니까 어려운 연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신지호: 이젠 자면서도 칠 수 있다. 하하하
KoN: 연기나 노래도 신경 쓰고 있지만, 그것들이 연주와 어떻게 잘 연결이 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KoN이란 이름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의 밸런스도, 배우들과의 호흡도 잘 맞았을 때 하나가 나오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리고 이젠 모두가 다른 파트까지 다 외우고 있다. 플라스크 역은 더블로 가고 있는데, 어떤 배우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악기가 아예 달라진다. 그래서 소리도, 느낌도 다른데 퀴퀘그랑 플라스크가 같이 해야 되는 부분에서 갑자기 플라스크가 놓치면 그냥 그 부분을 내가 먼저 치고 나간다. 내가 놓치면 또 플라스크가 메워주고.
매 공연 시작 전 지호 씨가 연주와 함께 사전공지를 한다. 매번 다른 곡들로 편성하는 것 같은데, 그때 연주한 감정이 그날의 이스마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궁금하다.
신지호: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에서의 어떤 느낌이 온다. 그 느낌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곡을 연주한다. 한번은 솔로앨범에 있는 ‘The End’를 편곡해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너무 강렬한 것을 치고 나니 그 여운이 나한테 계속 남아 있어서 연기하는 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는 ‘Overture’처럼 <모비딕>의 넘버들을 편곡해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좀 더 편안하게 이스마엘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러다 막공에서는 ‘왕벌의 비행’ 같은 거 막 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하하하
이 작품에서의 퀴퀘그는 편견도 없고 큰 그릇을 가진 순수한 인물이라 극 중 가장 멋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특히 이스마엘과 친해지면서 담배를 나눠 피는데, “담배를 나눠주는 것은 머릿속을 나누는 것”이라는 대사가 굉장히 멋졌다.
KoN: 연출님이 퀴퀘그는 정서의 중심이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아예 이해를 못 했다. 그 담배 대사도 얘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싶었다. 영화 <백경>에서의 퀴퀘그는 아예 대사가 없었고, 그 정서를 참고할만한 텍스트도 전혀 없었다. 작년 워크숍 때만 해도 많았던 대사가 점점 줄면서 남아 있는 대사 안에서 퀴퀘그를 보여줘야만 했다. 또 퀴퀘그가 비문명인이라서 어순도 굉장히 다르고 단어, 단어로 끊어서 얘기하는 편이었다. 난 발음도 나쁘지 않고 말도 술술 잘하는 편인데, 발음 좋다고 지적당하고 그랬었다. 어눌하게 하면 바보 같다고 하고. (웃음) 그 중심을 잡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신지호: 제일 멋있는 캐릭터라니까. 퀴퀘그가 원작에서는 야만인에 대머리고 그렇지만 여기선 멋지고 신비롭게 나오잖아.
대사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짧으니 결국 연주나 액션으로 퀴퀘그를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KoN: 액션으로 이스마엘의 가디언 같은 느낌을 줘야 했는데, 평소에는 연주할 때 말고 몸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서 있는 자세까지 액팅코치를 받았다. “퀴퀘그는 서 있는 것부터 남달라야 돼”라고 하시는데 내가 하는 걸 보시고 “음, 안 멋있구나” 이러고. 카하하하하. 작살 쏘는 것도 날렵해야 되는데 어설프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퀴퀘그는 전사의 이미지가 강한데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팔다리가 길어서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직접 팔을 저으며) 허우적 허우적 거린다. 나한텐 정말 커다란 모험이지. 몸집이 크고 포스 있는 퀴퀘그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표현한 퀴퀘그도 괜찮다고 해주시니 보람이 있다.
반면에 이스마엘은 사건의 관찰자라서 마지막 표류신을 제외하고는 눈에 띌만한 성격을 보여주기 어려운 캐릭터인데.
신지호: 어릴 때부터 연기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해보니 역시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신지호에게도 자꾸 반영되다 보니 좀 힘들다. 말한 대로 그 표류신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진짜 내가 표류된 기분이다. 친구들은 다 죽고 나 혼자 망망대해에 떠있다. (코가 빨개지며) 그걸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의 추억을 바다에 묻는다”라는 대사를 할 때 목이 메고 가슴이 너무 아파서 걱정이 된다. 요즘에는 맨 마지막 노래를 할 때까지 눈물이 나서 노래를 못한 적도 있다. 그 감정을 조절하는 게 프로인데 난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까 너무 힘들다.
현실에서 직접 겪기 어려운 감정들을 연기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연기를 처음 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신기하겠지만, 관객들 역시 그 미숙한 연기 속에서 어떤 진짜를 발견하게 된다.
KoN: 아까 말한 그 표류신에서 이스마엘이 퀴퀘그의 관을 찾을 때 나는 지호 뒤에 서 있기 때문에 공연할 때는 계속 지호 얼굴을 보질 못한다. 그런데 그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뒷모습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죽거나 생사를 초월한 존재가 되는데, 관조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모비딕>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지.
신지호: 막공 때 다 울 것 같다. 대성통곡할 것 같아. 어엉.
KoN: 공연 한 번 끝나면 맨날 지호 눈이 부어 있다. 그거 보면 나도 마음이 아프고. (웃음) 다른 배우들도 어느 순간 정말 슬픈 감정이 보인다. 다른 뮤지컬처럼 짧게 3개월 바짝 만나 일하는 것보다는 1년 넘게 같이 하고, 배우들도 처음 도전하는 이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굉장히 순수한 집단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프로의 느낌이 덜했고 그런 유대감이 더 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모비딕>이 끝나면 지호 씨는 바로 연극 <국화꽃 향기>에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된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됐나.
신지호: 공연이 당장 9월 1일 시작이고, 배우들은 지금 리딩 중인데 <모비딕> 때문에 참여를 잘 못했다. 20곡 작곡해야 되는데 아직 멀었다. 아아... 아아아아... 다시 스트레스가... 집에 가면 자야 되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잠은 안 오고, 곡도 안 써지고...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진짜 어떻게 하지? 그래도 다행인 건 <국화꽃 향기>가 있어서 오히려 슬픈 게 덜할 것 같다. 그게 없었으면 <모비딕> 끝나고 난 진짜 우울증 걸렸을 것 같다.
지금은 배우로 출연 중이지만, 각자 솔로 앨범을 낸 뮤지션들이기도 하다. 2집 앨범들은 언제쯤 만날 수 있나.
KoN: 준비 중이었는데 중단됐다. 아아아아...
신지호: 이렇게 슬픈 인터뷰는 처음이야. 으아앙.
KoN: 작년에 <모비딕> 전체 플랜을 들었을 때는 충분히 앨범 제작할 시간이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 훨씬 훨씬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이 작품에 할애하게 됐다. 그만큼 내 앨범 제작과 작곡 시간이 줄고 줄고 줄어서 계속 밀렸다. 원래는 <모비딕> 하기 전에 2집 앨범을 완성해서 시작할 때 짠! 하고 내놓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홀드 상태가 됐다. 10, 11월에 일본 갈 때도 2집 들고 가려고 했는데 다 어그러졌다. (웃음) 일본에서도 계속 언제 되냐고 묻고. 내 컴퓨터 작업 폴더에 들어가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언젠가 하겠지. (웃음)
신지호: 솔로 1집 < Ebony & Ivory >에 수록된 ‘The End’를 개인적으로 제일 아낀다. 그렇게 격정적이고 정열적인 음악이 내가 하고 싶은 목표였지만, 1집은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하고 어렸을 때부터 작곡해놓은 곡들을 모아서 낸 것이었다. 하지만 하반기에 작업할 2집은 더 비트 있고 리듬감 있고 신나는 정열적인 곡을 하려고 한다.
두 사람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이고, 자신만의 음악으로 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
신지호: 나는 딱 한 가지다. ‘The End’는 모든 게 다 끝나버린 것 같은 절망감과 허무함을 작곡한 건데 그걸 느끼면 되는 거다. 공감이 중요하다. 연주하기 전에 곡 설명을 꼭 하는데, 그러면 듣는 사람들도 이후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그 음악을 선곡하고 듣는다. 난 그런 게 너무 좋다. 내 감정을 음악을 통해 공유한다는 것이. 그런 피아니스트, 작곡가가 되고 싶다.
KoN: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똑같은 곡을 해도 내 색깔을 보여주고 싶고, 그러다 보니까 작곡을 해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으로 다가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집시 쪽 음악을 많이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음악도 하고 싶다. 일렉 바이올린도 가지고 있는데 아카데믹하면서도 일렉트로닉 음악을 잘 살리는 바이올린으로도 도전해보고 싶다. 하지만 모든 것의 전제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나 자신을, 그리고 나의 다양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얼마 후면 이스마엘과 퀴퀘그로 살아온 시간도 끝이 난다. 인생에 있어서 <모비딕>의 1년은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
신지호: 개인 스케줄도 있고,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좀 쉬면서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원캐스트가 부담이 됐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최초 액터-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의 이스마엘을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졌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더블 캐스팅이 있었다면 나눠야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 같다. 물론 더 잘하는 배우가 한다면 더 좋은 이스마엘도 나왔을 거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신지호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만의 것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이 있다. 표류신의 마지막 대사처럼 <모비딕>이 끝나면 나도 진짜 추억을 묻는 게 되는 거다. 이 느낌은 이제 며칠 남지 않았으니까 즐기려고 한다.
KoN: 역시 마찬가지다. 나한테 적합한 캐릭터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제의가 들어왔을 때 너무 기뻤다. 내가 아닌 다른 퀴퀘그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모비딕>은 이미 우리의 1년간의 젊음을 바친 작품이다. 시간이 흘러서 2011년을 바라보면 그 한 페이지가 이 작품으로 돼 있을 것 같다. 그래서 8월 20일 <모비딕>이 끝나면 페이지가 닫히는 거라 많이 아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