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라는 것은 사실 외모에 기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무대에서든 TV에서든 스크린에서든 김무열을 본 사람들은 탄탄한 몸이나 훤칠한 키가 돋보이는 ‘수트간지’로, 혹은 입가의 주름이 인상적인 환한 미소로 그를 기억해낸다. 하지만, 그에게서 주목해야 될 부분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이다. 뮤지컬 <쓰릴 미>의 모든 것을 가졌던 ‘그’도, SBS <일지매>의 심술 맞았던 시완이도, 영화 <작전>의 대한민국 경제를 논하던 조민형도 완벽해 보이는 모습 뒤에 흔들리는 눈빛을 담았다. “연기를 할 때 심도 있게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더라도 누구나 불안함과 떨림을 갖고 있잖아요. 근데 제가 그걸 극대화시키나 봐요. (웃음)”
특유의 불안한 눈빛이 가장 돋보였던 건, 바로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렸던 뮤지컬 <쓰릴 미>에서였다. ‘그’는 ‘나’의 넘치는 애정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쥐락펴락 할 줄 알았고 방화와 절도에 이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대담함도 가졌지만, 불안함을 달래려 시종일관 손을 움직였다. 그래서 결국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후 고요한 감옥 안에서 “죽는 건 싫어”라고 차곡차곡 쌓였던 불안함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던 순간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폭발적이었다. “<쓰릴 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주셔서 너무 고맙죠. 외국에는 한 작품을 장기적으로 하는 대표배우들이 있어요. 어리기도 하고 많은 작품을 하지 않아서 아직 결정 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쓰릴 미>는 그런 작품 중 하나로 염두에 둘 정도로 생각하는 작품이에요.”
올해 상반기를 <작전>의 조민형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즐거운 인생>의 세기로 거쳐 온 그는 7월부터 사춘기 소년 멜키어가 된다. “아이들을 순종적이고 획일화된 인간으로 만들려는 사회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꿈꾸는 소년이에요.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사춘기’ 특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알겠는데 그걸 표현하기가 쉽지 않네요. 연습을 하면 할수록 나이를 먹었고, 속세에 찌들었다는 게 느껴져요. (웃음)” 앞으로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달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하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른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대해 물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제2차 성징을 맞이한 19세기 독일 소년소녀들의 불안과 넘치는 에너지를 강렬한 사운드에 실어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지난 2007년 61회 토니어워즈에서는 작품상을 비롯한 총 8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7월 4일 오르는 한국초연에는 김무열 외 조정석, 김유영, 김지현, 김하늘 등이 출연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음악은 7~80%가, 안무는 1막 안무가 끝났어요. 드라마도 1막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잡아가는 중이구요. 형식적인 틀은 브로드웨이와 같지만 그 안에서 조금은 다르게 수정되어 한국만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만들어질꺼에요.” ‘2차 성징’이 극을 이끄는 주된 소재인 만큼 성(性)적인 부분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김무열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처음’이라는 감정의 지점이다. “가장 큰 사건이 벤들라의 임신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가정과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학대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맞닿아있어요. 어른들에게서 학습 받지 못하고 억눌려만 있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직접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감정들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걸 소중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 김무열은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우, 예지원이 함께 한 텔레시네마 프로젝트 <결혼식 후에> 촬영을 마쳤다. 3~40대의 남녀얘기에 ‘김무열?’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사귀는 사람이야? 어리네? 라고 말할 때 그 어린애, 그게 저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처음에 감독님께서 40대 역할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사실 얼굴 두껍게 하고 “성우야” (웃음) 할 수는 있는데 얼마나 안어울리겠어요. 그래서 역할을 바꿔달라고 부탁드렸고, 촬영 이틀 전에서야 픽스가 됐어요. 생각 없고 철없는 바람둥이로 나와요. (웃음)” 그리고 김무열에게서 기다리는 것 또 한 가지, 바로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과 <일지매>로 사극에만 출연했던 그를 현대물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일지매> 할 때 <쓰릴 미> 앵콜이랑 살짝 겹쳤는데 밤새고 아침 10시까지 촬영한 후에 그날 3시, 6시 공연하러 가고 그랬어요. 근데 아무래도 미니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니까 공연이나 드라마, 한 번에 하나씩만 하려구요.” 당분간은 무대에서만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기쁘기도 하다. 오롯이 무대 위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 어떤 것을 마구 뿜어내는 모습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Best number
Totally Fucked
시험에서 낙제해 상심한 모리츠는 자살에 이르고, 선생님들은 그의 죽음을 멜키어 탓으로 몰아간다. 궁지에 몰린 멜키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박한 심정을 담아 친구들과 함께 이 곡을 부른다. “이걸 듣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막 뛰어요. 속에서는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요동치는데 억눌려 있으니까 다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영상만 봐도 느껴지거든요. 음악이 너무 신나면서도 가슴 한켠이 확 달아오르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이 곡에서 나오는 안무도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을 춤이 아닌 움직임으로 잡아내서 표현하거든요.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잘 만들었더라구요. 중요한건 이제 우리가 잘~해야 된다는 거죠. 하하” 한국의 멜키어를, 한국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만날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가슴이 뜨거워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