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지한 힐링, Like
뮤지컬 <존 도우>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작품은 “월스트리트가 무너졌다”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나른하게 연주되던 색소폰 솔로는 규칙적인 드럼 비트의 긴박함으로 대체된다. 타악기의 비트 위로 점점 더 많은 악기가 쌓이면서 더 높고 큰 소리로 대공황의 혼돈이 재현된다. 폭발 직전의 감정과 스윙재즈의 흥겨움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관객의 시선을 잡아챈다. <시카고>를 제외하면 재즈를 베이스로 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뮤지컬 시장에서 <존 도우>는 공연 시작 5분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남긴다. 때때로 단독으로 감상했을 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재즈는 오히려 뮤지컬이 되면서 장르 자체의 편견을 깬다. 리듬감이 좋은 스윙재즈는 작품에 유머러스함을 얹고 대공황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극 전반에 만연한 무기력을 흔든다. 나른하게만 느껴졌던 연주는 은밀한 제안이라는 인물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즉흥성 강한 스캣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득권들의 욕망으로 빛을 발한다. 특히 <존 도우>는 꿈이 좌절된 평범한 이들의 상처와 연대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 세상은 이름 없는 존 도우들이 이뤄낸 기적이죠”라는 가사가 과열된 경쟁과 성과주의에 지친 모두를 위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재즈는 때로는 흥겹게 함께 춤추게 하고, 때로는 로맨틱하게 내 손을 조용히 잡아준다.
아쉬운 균형감, Dislike
대부분의 뮤지컬이 서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변화를 담는다. 때문에 1막과 2막의 목표는 다를 수밖에 없고, 1막과 2막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극도 많다. 그런데 <존 도우>는 그 차이가 제법 크다. 1막은 ‘생존’을 위해 만난 윌러비와 앤이 신념을 갖기 전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직 존재의 이유를 자각하지 못한 둘은 종종 삐걱거리고 좌충우돌하다 윌러비는 1막 엔딩의 연설을 통해 존 도우로 각성한다. 이후 2막은 신념을 갖게 된 두 사람이 평범한 이들과 연대하고 ‘크리스마스에 자살하겠다’는 거짓 편지의 해결을 위해 나아간다. 해결해야 할 사건이 해결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2막에서는 존 도우의 인기에 편승해 권력을 얻으려는 기득권들의 욕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1막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1막은 경쾌한 재즈로 가득하다. <존 도우> 속 재즈는 작품이 가진 혼돈의 시대를 설명하고 동시에 소시민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그려낸다. 하지만 재즈 자체가 존 도우를 대변하는 장르는 아니며, 그의 넘버들은 재즈보다는 발라드에 더 가깝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2막에서의 재즈는 존 도우 클럽을 상징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밋밋해보이는 2막의 이유는 여기서 발견된다. 작품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1막과 2막의 균형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