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바꾸는 단 하나의 시선, Like
뮤지컬 <미드나잇>의 2017년 초연과 이번 재연은 전혀 다른 극이라 해도 무방하다. 같은 재료를 활용하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며, 이 차이는 달라진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번 <미드나잇>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시’의 정서다. 무대 정중앙에는 미니어처처럼 구현된 한 부부의 집이 있다. 사방은 뚫려 있고, 집 주변으로는 여러 명의 낯선 존재가 그들을 향해 서있다. 다른 인물들은 무대 위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지만, 부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이 좁은 집이 전부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스탈린 초상화가 내려다보는 것도 이들의 집이며, 관객마저도 그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감시자가 되는 구조. 여기에 이번 <미드나잇>은 액터뮤지션 뮤지컬의 형식을 차용해 낯선 존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그들의 삶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감시의 정서를 더욱 공고히 한다. 부부를 향해 다가가는 이들의 움직임과 점점 가까워지고 커지는 연주 사운드는 우먼과 맨이 느끼는 ‘압박’이라는 감정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해낸다. 더욱 풍성해진 악기들은 인물의 감정을 다채롭게 담아내고, 감시자들의 노래는 일관성이 있는 부부의 곡과는 다르게 경쾌한 선율 위에 불안과 공포의 가사로 부부를 더욱 옥죈다. 꼭꼭 감춰둔 비밀이 밝혀지고 비지터가 건넨 탬버린을 우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살기 위해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나약함을 탁월하게 선보인다.
심리적 거리감, Dislike
이번 <미드나잇>은 무대와 음악, 조명과 음향, 배우들의 연기로 1930년대 공포 시대 ‘감시’의 정서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80여 년의 시간이 흘러도 역사는 반복되고, 통제의 방식은 더욱 교묘해져 누군가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그 실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재 정권 아래서 살아가는 인간의 공포를 21세기의 한국 관객이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드나잇>은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다양하게 조여 오는 공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초점을 둔다. 1막이 엔카베데에 의한 연행과 감금, 고문의 언어와 그들을 두려워하는 부부에 집중함으로써 극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면, 2막은 이들의 비밀을 하나씩 들춰내며 생존이 인간을 어디까지 끌고 내려가는가에 주목한다. 비지터의 존재가 실체이면서도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의 의인화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작품은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이라는 평가는 ‘개운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다른 극과는 달리 <미드나잇> 속 인물들은 양심의 마지노선을 훌쩍 넘겨버린다. 관객은 선하지 않은 인물을 이해하지만, 과연 그 인물이 얼마나 관객의 마음에 깊이 남을지는 알 수 없다. 심리적 거리는 작품을 차갑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지만, 냉정한 시선 끝에 다다르는 결론은 흐리다. 가까워 보이지만 가장 먼 이야기. 현재의 <미드나잇>이 서있는 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