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 Like
타이타닉호 침몰은 100여 년 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오래된 실화를 가까운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의 단편적인 단어로만 기억한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이 납작한 단어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애쓴다. 객석으로까지 길게 뻗은 여러 층계들은 타이타닉호의 내부를 형상화해 관객 역시 타이타닉호의 승객이라는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뮤지컬 오케스트라로는 드물게도 트럼본과 바순, 하프 등의 악기를 편성한 19인조 오케스트라 역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벗어나 무대 한켠에 자리함으로써 이들이 단순히 뮤지컬의 연주자만이 아닌 타이타닉호의 구성원임을 명확하게 한다. 여러 요소 중에서도 관객이 <타이타닉>을 생생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는 결정적인 부분은 역시 인물이다. 뮤지컬은 1~2명의 주인공을 내세우는 대신 스무 명의 배우를 통해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인물 모두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부모의 반대를 피해 뉴욕에서의 결혼을 꿈꾸는 연인,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떠나는 이민자들, 명예로운 은퇴를 앞둔 선장, 안전보다는 평판이 더 중요한 회장까지. ‘타이타닉호 침몰의 피해자’라는 단어 뒤에 가리워진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셈이다. <타이타닉>은 서로 다른 인물을 최대한 촘촘히 등장시켜 그들의 욕망과 성격, 일상을 복원해낸다. 물론 1등석에서 3등석까지, 회장님에서 화부까지, 일흔의 노인부터 열넷의 소년까지 뮤지컬에는 다양한 계급이 존재하고 이는 분명히 눈에 보인다. 그러나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기 노래를 하고, 또 같은 노래를 부름으로써 <타이타닉>은 모두가 똑같은 소중한 생명임을 강조한다. 스무 명이 차곡차곡 화음을 쌓아 하나의 곡을 만들 듯 그렇게 함께 사는 곳이니까.
동전의 다른 면, Dislike
모든 장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곧 단점이 되기 마련이지만, <타이타닉>은 그 변화가 상당히 순식간에 벌어진다. 뮤지컬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동명영화보다 먼저 제작되었어도 많은 사람은 ‘타이타닉’에서 영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뮤지컬 <타이타닉>은 여러 면에서 관객의 기대를 부순다. 일단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고, ‘My Heart Will Go On’이라는 명곡도 등장하지 않는다. “I’m the king of the world”라는 대사도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일반 대극장 뮤지컬을 떠올린다고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대의 높은 곳까지 쓰지만, 재난을 다룬 콘텐츠 특유의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멀다. 극에 등장하는 러브스토리가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극적이지도 않고, 박수갈채를 받을 정도로 폭발적인 아리아도 없다. 다양한 의상과 가발도 그들의 계급을 드러내는 정도에 그칠 뿐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타이타닉>은 다소 심심하고 지루한 뮤지컬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대신 다양한 인물과 배 안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오히려 관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사 선택해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