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테레즈. 테레즈. 테레즈”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물기 없이 자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테레즈 라캥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고모에게 맡겨져 병약한 사촌 카미유의 “수호천사”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의 의지로는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테레즈에게서 생기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작품은 그런 그가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억압된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테레즈와 로랑의 불륜이 작품의 큰 축을 담당하지만, 뮤지컬은 테레즈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에 목적이 있다. 배우의 연기와 음악, 무대미술 등 모든 요소가 작품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팽팽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인물들의 관계다. 무기력한 카미유와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라캥 부인은 테레즈를 가두고, 거침없고 적극적인 로랑은 테레즈의 변화를 부추긴다. 작품은 넷 모두의 결핍과 욕망을 투명하게 펼쳐놓음으로써 서사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깊이를 담아낸다. 또렷한 캐릭터와 균형감 있는 관계가 탄탄한 개연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뮤지컬은 서로 다른 입장처럼 보이던 이들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을 통해 그 어떤 인물도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인물의 결을 풍성하게 다듬는다. 이런 관계성은 무대미술과 음악을 통해 증폭된다.
무대에는 카미유의 방과 테라스, 거실과 주방이라는 네 개의 공간이 존재한다. 각 공간에는 주도권을 갖는 인물이 존재하며, 인물들은 공간에서 수시로 섞이고 흩어지며 관계를 쌓아간다. 오픈된 공간은 감정을 전달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사각지대에서 테레즈와 로랑이 벌이는 행위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인물들 덕에 더욱 은밀하고 에로틱해졌다. 여기에 오묘한 분위기의 그린과 퍼플 조명이,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등이, 좁고도 기다랗게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마치 또 다른 캐릭터처럼 움직이며 작품이 갖고 있는 미스터리한 정서를 구현한다. 불안하고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고음과 휘몰아치듯 빨라지는 템포, 반복되며 각인되는 리듬의 음악도 긴장감을 더한다. 같은 인물이라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창법은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특히 <테레즈 라캥>의 가사들은 상황을 설명함과 동시에, 복잡미묘한 감정과 뉘앙스를 명확하게 캐치해내며 인물의 성격을 더욱 풍성하게 그려낸다. 솔로와 듀엣, 삼중창과 합창으로 관계의 균형과 긴장이 더해지고, 규칙적으로 들리는 엔진소리나 빗소리 등의 효과음은 카미유의 죽음 이후 테레즈와 라캥 부인이 겪는 환청과 환영을 구현한다.
물론 언급한 음악과 무대의 방식은 은유보다는 직접 묘사에 가깝고, 무대 위 상황은 종종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작품이 다루는 감정의 크기와 간극이 크고 서사가 극단적인 만큼, 다양한 요소에서 탄탄히 쌓아올린 정서는 다소 과해보일 수 있는 표현법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작품의 인물들이 불안한 토대 위에 섰다면 테레즈가 보여주는 감각의 즉각적인 반응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하나의 주제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에너지가 결핍과 파멸의 비극을 견인하는 셈이다. 한 눈 팔 시간을 단 1초도 내어주지 않는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