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래시계>, 뮤지컬 넘버의 힘 (스테이지톡)

뮤지컬 넘버의 힘, Like
좋은 뮤지컬 넘버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좋은’의 기준이 귀에 꽂히는 멜로디나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 한 가사,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장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 넘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 서사를 이끄는 요소로서의 주체성을 갖느냐에 있다. 그 기본기 위에 가사와 선율, 장르가 같은 주제로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뮤지컬 넘버로서의 힘을 갖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작이자 끝인 ‘17, 18, 19 그리고 스무살’은 뮤지컬 <모래시계>의 음악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다. 이 곡에서 태수와 우석은 만나고 친해지고 헤어진다. 태수의 거침과 우석의 신중함도 드러나고, 그들이 그런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도 보여진다. 태수의 육사 입학 실패와 우석의 법대 합격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두 사람의 상황은 조와 템포의 변경으로 순식간에 설명된다. 음악의 기승전결이 곧 인물의 감정과 상황의 기승전결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비슷한 패턴에 조금씩 변주되는 가사들은 그 어떤 설명적인 대사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후 <모래시계>는 길 위에 사는 태수를 위한 록, 운명 속에서 발버둥치는 혜린을 위한 현악기, 끊임없이 갈등하는 우석을 위한 발라드가 중심을 잡고, 행진곡 풍의 음악이 엄혹한 시대에서 싸우는 이들을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같은 가사와 멜로디를 태수와 우석, 혜린이 상황에 맞춰 번갈아 부르며 다른 듯 같은 세 인물은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게 됐다. 드라마의 주제곡이나 다름없던 ‘백학’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돼 요소요소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이로써 뮤지컬 <모래시계>는 ‘뮤지컬은 음악으로 완성된다’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문장을 실체화했고, 이 작품이 원작의 드라마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존재함을 증명해냈다.
희미해진 관계의 그림자, Dislike
<모래시계>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한국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독재정권에 맞서 각계각층에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 시기인 만큼, 극에서도 동일방직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을 연상케 하는 사건들이 그려진다. <모래시계>는 여기에 각기 다른 세 인물을 던져두고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감정에 집중한다. 태수의 거친 삶은 불합리한 이유로 꿈을 빼앗기고, 한시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던 주변의 각종 폭력으로 설명된다. 정의구현에 뜻을 품은 우석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갈등하다 군에 의한 피해자가 되고, 혜린은 시대에 편승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한 삶을 산다. 1막이 시대가 한 개인에 미친 영향에 집중한다면, 2막은 그 시대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태수와 혜린의 사랑이 있다. 자신의 선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의 희생자였던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된다. 이들이 겪어내는 일은 목숨을 위협받는 것과 같은 극적인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태수와 혜린의 관계는 <모래시계>가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다양한 사건과 각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느라 태수와 우석의 관계만큼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짙어질수록 극적인 서사는 힘을 받지 못하고 삐걱대는 것 역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