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로 만든 태평성대, Like
<1446>은 자객신으로부터 극을 시작한다. 피라미드 형태로 대형을 갖춘 십 여 명의 앙상블 배우들이 각 잡힌 안무로 자객을 표현한다. 칼을 든 팔을 곧게 뻗고, 제법 각도까지 맞춘 듯 말 그대로 ‘칼군무’에 가사 없이 긴박함을 표현하는 음악을 더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446>의 강렬한 첫인상이자 작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오프닝. <1446>은 그야말로 앙상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들은 자객이 되었다가 궁녀가 되고, 신하가 되었다가 농민이 된다. 앙상블 배우들이 시시각각 다양한 배역으로 작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김선미 작가와 김은영 작곡가는 <파리넬리>에 이어 앙상블이 가진 효과를 극대화하며 극을 진행시킨다. 아크로바틱을 비롯해 다양한 액션신은 극을 화려하게 만든다. 신하들은 쉴 틈 없이 세종을 압박하며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답답함을 관객이 함께 느끼도록 한다. 한글 창제의 순간에는 자음의 아름다움을 독무로 담아낸다. 백성을 나라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펼쳐온 세종을 상징하듯 극의 많은 부분은 합창이 끌고 간다. 합창은 관객이 대극장 뮤지컬에 기대하는 웅장함을 극에 불어넣고, 한 목소리를 낸다는 면에서 화합을 상징한다. 세종이 이룩한 ‘태평성대’는 서른여섯 배우들의 합창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셈이다.
과욕이 부른 고음전쟁, Dislike
<1446>은 세종이 충녕대군이었던 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에 가까운 일대기를 그린다. 유약했던 대군 시절, 상왕과 신하들의 등쌀에 주눅 들던 집권 초기, 4군 6진의 설치로 국방력을 강화했던 중기를 거쳐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말기까지. 세종의 수많은 업적을 넓게 펼치고 그 위로 인간 이도가 가졌던 다양한 감정을 쏟는다. 물론 소헌왕후를 대하는 로맨틱함이나 장영실에게 보여주는 인자함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1446>를 지배하는 정서는 무거운 왕의 짐을 안게 된 자의 불안 그 자체다. 세종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한다. 피로 물들인 상왕과는 어떻게 다른 길을 가야 하는가. 모함에 빠진 부인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여진족에 맞서 국방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들이 아비를 살해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그 고민의 결과가 업적들이고, 업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종의 고민도 깊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고민의 표현 방법이 모조리 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세종은 물론 양녕과 태종, 전해운 모두가 절규하며 고민한다. 모두의 감정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슬플 때도, 힘들 때도, 화날 때도 같은 비중으로 소리만 지른다면 과연 누가 그 감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작품의 퀄리티를 위해서라도 강약조절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