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프란체스카의 공허함 (스테이지톡)

프란체스카의 공허함, Like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김태형 연출가는 동명의 영화를 다시 보니 이 작품이 “프란체스카라는 여성의 자아발견기”로 읽혔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뮤지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프란체스카 자체다. 낯선 곳에서 살아온 지 십여 년, 고향과 자신을 모두 잃어버린 이의 공허함은 디테일한 영역에서 발견된다. 관객은 남들은 외면하지만 자신은 소중히 간직해온 펜넬이나 직접 만든 버터 같은 음식과 모카포트 등의 소품에서는 물론, 일기예보 대신 재즈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와 스케치 같은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프란체스카를 알 수 있다. 여기에 프란체스카가 끊임없이 달래야 하는 사춘기 아이들과 언제나 제 말만 하는 남편,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동네 주민들의 관찰까지 더해지면, 그가 자주 내뱉는 한숨의 무게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프란체스카가 그에게 지금의 고향을 눈앞에 보여주고 자신이 그리워하던 가치를 인정해주는 로버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짧은 사랑을 간직하면서도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남편을 떠나보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모습에서는 프란체스카의 강인함도 확인할 수 있다. 뮤지컬은 느리지만 우직하게 프란체스카의 현재 상황에 최대한 집중한 연출 덕에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단어 대신 인물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어긋난 시도, Dislike
프란체스카의 감정 상태와 선택에 집중한 연출의 노선은 젠더감수성이 높아진 2017년을 반영한 업데이트가 맞다. 덕분에 작품은 많은 여성의 공감을 얻고,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사랑 역시 논리적인 정당성을 부여받게 됐다. 그러나 대극장 무대에서 노래를 통해 감정의 기승전결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한 뮤지컬배우 옥주현, 박은태와 연극적 디테일로 승부하는 김태형 연출가의 만남은 예상과는 다르게 서로의 단점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야 말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지저스나 <도리안 그레이>의 헨리처럼 꼿꼿한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훌륭한 박은태의 쨍한 음색과 발성, 무대 위의 자세 등은 역으로 로버트가 가진 히피의 자유분방함을 지우는 데 쓰였다. 인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대부분을 연기적인 측면에서 찾다 보니 옥주현이 보여주는 감정 역시 객석으로까지 넓게 전해지지는 못했다. 1,2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는 디테일한 요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하다. 170분 간 관객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뮤지컬은 시간에 맞춰 달라지는 하늘 영상과 무대의 일부를 오케스트라 피트 앞으로 이동시키는 장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적인 요소들 역시 공간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거나 인물의 감정을 대신하는 상징으로 쓰이기에는 상당히 모호하다. 좋은 음악과 인지도 높은 배우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쉬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