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찌질의 역사>, 일상으로의 초대 (스테이지톡)

일상으로의 초대, Like
10년 전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주류가 <김종욱 찾기>와 <싱글즈>, <카페인>처럼 관객의 공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최근의 소극장 창작뮤지컬들은 일상의 공감보다는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극단의 감정을 겪는 캐릭터를 내세우는 작품이 다수를 이룬다. 그에 비하면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유행가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그야말로 과거회귀적이다. <스타크래프트>와 문자가 40자밖에 써지지 않는 구형 핸드폰, 임창정의 ‘늑대와 함께 춤을’이나 김건모의 ‘스피드’가 그려내는 시간적 배경 자체가 그렇고, 현재 뮤지컬 시장의 트렌드에 정확히 반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래서 <찌질의 역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웃을 수 있다. <찌질의 역사>는 좋아하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르는 것도 애써 아는 척 하거나, 그 사람의 습관이 헤어지고 나서도 내 습관으로 남아있거나, 감정의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좋은 친구를 잃을까 봐” 마음을 숨기는 네 남자의 뜨거웠던 순간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프로그램북에 ‘찌질이 빙고’를 넣을 만큼 누구에게나 하나 이상씩 있을 감정의 공감이 <찌질의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인 셈이다. 그러나 <찌질의 역사>는 스토리에 있어서만큼은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자신의 ‘찌질함’을 고백하는 많은 작품에서 그들은 최악의 경험을 꺼내와 연인이었던 상대를 폄하한다. 동명의 웹툰마저도 이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주체성 강한 여성들에 비해 자신의 감정 하나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남성들의 모습을 주요 에피소드로 삼으며 그들의 반성과 변화, 성장에 방점을 찍는다.
밋밋하거나 산만하거나, Dislike
뮤지컬은 음악을 통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장르적 특성상 사사의 개연성이 약할 때가 많다. <찌질의 역사> 역시 14년이라는 시간동안 각각 2~3명의 인연들을 등장시키며 네 남자의 성장에 주목하는 만큼, 이들의 연애사는 에피소드 나열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주인공인 민기 외에도 기혁과 광재, 준석의 연애사 역시 짧지만 나름 중요하게 다뤄지면서 극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찌질의 역사>는 어떤 한 사람의 추억을 구체적으로 재연하는 대신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권설하와 민기를 거쳐, 최설하에게서 보이는 메탈리카 티셔츠 같은 소품들은 그 어떤 구체적인 에피소드보다도 인간을 변화시키는 ‘연애’의 본질을 더 깊게 보여준다. 여기에 같은 가사를 서로 다른 상황에 대입해 전혀 다른 감정을 만들어내는 음악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낸다. 서사의 빈 구석을 익숙한 가요와 관객의 추억으로 살려내는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