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렬 작곡·음악감독, 경민선 작가, 김봉영 소리꾼은 <춘향전쟁> 외에도 여러 작품을 같이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의 호흡이 잘 맞는가.
신창렬: 그림(The林)은 2001년에 창단해서 연주팀으로 활동해왔다. 2006년부터 음악극에 도전했는데 연신 실패를 했었다. (웃음) 그러다 <몽유록>을 보러 온 경민선 작가를 만나 <접신가객>, <환상노정기>, <춘향전쟁>을 같이 하고 있다. 김봉영 소리꾼은 <몽유록>부터 같이 했고. 전통을 소재로 한 음악극이 상업뮤지컬처럼 고착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통해 상품성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목표로 함께 하고 있다.
김봉영: 한참 판소리를 어떻게 다른 형태로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많던 때 신창렬 대표님을 만났다. 둘이 생각하는 방향이 언제나 잘 맞고, 상대가 요구하는 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수용을 잘 하는 편이다. <꼬꼬만냥>이라는 작품은 이틀 만에 완성이 됐는데, 서로의 방향성이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창렬: 작업을 할 때 쿵짝이 맞는 사람이 있지 않나. 전통성악을 하는 주자들 모두가 대중적인 리듬에 대한 감각이 있는 건 아닌데 김봉영 소리꾼에게는 그게 있다.
경민선: 판소리는 선율이 아닌 박자가 중심이고, 그 위에 정서와 성음이 얹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나도 전통소리를 바탕으로 한 작업을 많이 하는데, 음악을 만들 때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여기서도 멜로디 위주로 가는 노래가 없다고 볼 순 없지만, 많은 음악들이 판소리의 구조를 인식하고 만들어져서 소리꾼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김봉영: 이런 얘기를 소리꾼이 아닌 사람이 하는 걸 처음 듣는다. (웃음)
<춘향전쟁>은 ‘폴리아티스트’라는 생소한 직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가.
신창렬: 음악가로서 각각의 소리를 하나씩 떼어보니 새롭게 보이는 시간이 있었다. 소리가 갖고 있는 기본 성질이 모여서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단위의 소리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영상을 전공하는 학교에서 2년간 폴리 수업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이 경험을 통해 소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을 보고, 음악에 대한 외로움은 많은 사람의 경험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침 <환상노정기>를 통해 영상과 음악의 결합을 경험했고, 이 안에서 뭔가를 찾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폴리아티스트, 판소리, 정체성 애매한 그림(The林)의 창작음악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작가와 1년을 고민했다.
김봉영: 나는 ‘폴리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를 이 대본에서 처음 봤다. 전통음악은 소리와 떼어놓을 수 없고, 들리는 영역이지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일상의 소리들을 만들어내는 폴리아티스트가 하는 일도 결국에는 음악이겠다 싶었다.
폴리아티스트와 영화 <성춘향>의 연결고리는 어디서 발견했나.
경민선: 신창렬 감독이랑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이걸 날더러 쓰라고 하진 않겠지 했었다. (웃음) 폴리아티스트에 대해 알아볼수록 이건 영상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더라. 한국의 첫 유성영화가 <춘향전>이라고 한다. 판소리와의 연관성도 당연히 있고, 1961년에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당대 가장 유명한 감독·배우들이 격돌했다는 사건도 재밌어서 선택하게 됐다.
신창렬: 사실 <성춘향>이 폴리아티스트가 기술적으로 음향효과를 낼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은 아니다. 그럼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점을 찾아야 할까. 그 시대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당시는 전통이 새롭게 변하고, 미디어 콘텐츠를 여는 시대였다. 우리가 하는 새로운 방식의 작업이 1960년대와 맥을 같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변정주 연출가는 <환상노정기>를 연출하긴 했지만, 완벽하게 시작부터 함께 한 작품은 <춘향전쟁>이 처음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변정주: A4 1장짜리로 정리된 텍스트를 받았는데 막막하긴 했다. 그래도 뭐가 되긴 될 거고, 내가 할 게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다른 장르의 연출도 하고 있는데, 판소리나 전통연희에는 영역의 구분이 없다. <환상노정기> 작업을 해보니 음악적 판단이든 텍스트의 해석이든 뭐든 다 같이 하더라. 이미 그런 소통이 잘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의 무대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신창렬: 폴리를 소재로 한 무대공연이 없었다. 무대화 왜 다들 안 했겠어, 쉬웠으면 했겠지. (웃음) 최초로 시도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경민선: 자료조사 기간이 길었다. 폴리의 방식도 알아야했고, 소리를 낸다는 건 무엇이고 시대의 소리라는 건 어떤 것인지도 고민해야 했다. 여기에 국악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기도 했고 늦게 알게 된 정보들도 있어서 드라마로는 부족한 면이 있는 상태로 올라가서 공연을 보면서도 재공연만을 기다려왔다.
작창의 과정은 어땠나.
김봉영: <춘향전쟁>에서의 소리꾼은 전통판소리의 소리꾼과는 다르다. 전통판소리의 소리꾼이 나로서 등장해서 여러 인물을 표현한다면, 여기서는 신 감독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고 소리꾼은 흐름을 잇는 정도로만 등장한다. 구조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작창도 장단에 얽매어있는 전형적인 소리가 아닌 자유로움이 필요했다. 창작판소리 작업도 하는데, 그때는 전통판소리의 구성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옷을 입힐까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해왔다. 작창은 언제나 기승전결이 명확했고, 그게 잘한 작창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림(The林)과의 작업은 융합이 중요하고, 다른 작품들보다 <춘향전쟁>은 좀 더 도전적이었다. 말과 소리의 중간영역을 표현하려 했고, 개인적으로도 소리에 자율성이 더해진 판소리라는 점이 좋았다.
신창렬: <춘향전쟁>은 연기와 노래, 영상의 호흡 모두를 담아내야 한다. 각 장면들이 어떤 감정을 꾸준히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장면을 리듬감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8년 11월 초연 후 빠르게 재공연을 하게 됐다.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경민선: 사실 작품에 있는 여러 요소들 때문에 효과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앙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행어사 출두하는 장면이 작품 안에서 여러모로 클라이맥스인데, 공연을 보니 내가 논리로 잘 못해놓은 것을 연출적 에너지로 끌어올리더라. 이번에는 드라마적으로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수정작업을 했다.
암행어사 출두 장면의 함성을 4·19 혁명에서 가져오고, 촛불집회와 현장의 목소리로까지 연결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변정주: <춘향전>은 권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우리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통금이나 검열이 있었던 엄혹한 독재정권 시대이기도 하다. 연출적 에너지로 끌어올린다고 했는데, 시대의 소리를 담아내는 과정이 텍스트 안에도 잘 녹아있었다.
경민선: 소리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이것은 부딪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더라.
김봉영: 그 유신시대의 마찰이 지금의 촛불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양한 요소를 담은만큼, 관객이 가져갈 수 있는 주제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통해 어떤 걸 보여주고 싶나.
변정주: 지난 공연에도 없었던 건 아닌데 이번에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이유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춘향전쟁>은 변화하는 신 감독을 통해 근거를 알고 행동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하는 작품이다.
경민선: 신 감독이 세형을 찾아올 때만 해도 이 사람에게 예술은 돈이고, 성공이고, 이겨야 되는 것이다. <성춘향>의 효용은 이 예술가에게조차도 자본인 셈이다. 그런데 세형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이 4·19의 함성을 찾아낸다. 영화나 소리라는 것이 모두다 허구인데 그 허구의 것에 가치를 두는 인물로 변화하는 거다. 상품의 제왕이 개봉을 미루면서까지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것.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김봉영: 폴리아티스트는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 신 감독이 변화하면서 발견하는 ‘진심’이라는 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폴리아티스트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 없고, 진심 없는 예술과 소리 없는 음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게 소중한 건가 싶은 거다. 소중한 것은 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걸까.
신창렬: 지금 세상은 모든 미디어의 중심적 가치가 시각에 있다. <춘향전쟁>은 청각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소리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봤더니 그 안에는 판소리도, 전통음악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의 소리도 있었다. 이 작품은 소리+소리+소리가 갖는 새로운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공연인 셈이다.
최근 전통에서 동시대를 발견하고 말하는 콘텐츠들이 많아졌다. <춘향전쟁>이 관객에게 어떻게 기억되면 좋을까.
신창렬: 작품에 뭐가 참 많다. (웃음) 소리꾼도 있고, 판소리도 있고, 영상도 있고. 60년대는 국악에 대한 인식이 서양음악에 비해 낮았다. 폴리아티스트도 ‘생효과맨’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그들의 일을 낮춰 말하는 지칭이다. <춘향전쟁>에서는 그런 시대를 거쳐 온 영상을 60년이 지나 전문화된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닫는 게 있고, 관객 역시 난생 처음 보는 경험에서의 재미 같은 게 있다면 좋겠다.
변정주: 첫째로 재밌으면 좋겠다.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림(The林)의 매력을 느끼길 바란다. 우리 음악에 대해 20대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림(The林)으로부터 우리 음악의 매력을 느끼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음악의 구성 원리가 어떻게 변형되고 서양악기가 들어와서 새롭게 달라지는 부분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춘향전쟁>이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공연이 된다면 좋겠다.
신창렬: 전통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경중을 따지는 분들이 간혹 있다. 전통을 다루는 게 얼마나 가볍고 무거운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완성도를 찾으면 다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작업도 그 과정 안에 있다. 앞으로도 전통을 소재로 한 음악극의 형태가 잘 자리매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