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컨택트>,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텐아시아)

현실이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자기안의 판타지를 더욱 키워나간다. 뮤지컬 <컨택트>(Contact)의 주인공들도 다르지 않다. 귀족들은 그네를 밀고 끌고 타며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고, 중년의 수다쟁이 여인은 뷔페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강압적인 남편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뉴욕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동안 받은 트로피로 체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진 마흔둘의 남자 역시 다르지 않다.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은 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며 새로운 삶으로의 도전을 꿈꾼다. <컨택트>의 춤은 그렇게 주인공들의 감춰진 꿈과 욕망을 대변한다. 그래서 춤은 격렬하면서도 부드럽고, 섹시하면서도 우아하다. 서울과 고양에서 단 열흘씩밖에 공연하지 않는 <컨택트>. 한마디로 놓치면 절대 후회한다.
눈 깜빡이는 0.001초조차 아깝다 9
이건 기이한 경험이다. 땀이 흘러내리고 팔딱이는 육체에서 수만 가지 감정이 드러난다. 너무나도 슬프고, 기쁘고, 또 다시 애달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목소리가 아닌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팔과 다리를 통해 흘러넘친다. 무언극에 가까운 1장의 ‘Swing’과 고전적인 발레를 선보이는 2장 ‘Did you move’를 건너 3장 ‘Contact’에 도달하면 그 장점은 극대화된다. 18C 낭만파 화가 프라고나르의 <그네>에서 뛰쳐나와 1954년을 지나 현대로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등장인물의 판타지와 감정은 점점 디테일해지고, 그 섬세한 변화에 맞춰 관객의 감정 역시 동하게 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비대중적인 장르인 무용이 가장 큰 중심축인 만큼 음악에서는 훨씬 대중적인 <비제>의 ‘Farandole’과 ‘Beyond Sea’, ‘Topsy’ 등의 소스를 사용해 관객이 무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아선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서있는 배우들 역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물론 ‘연기하는 댄서’가 주를 이루는 만큼 연기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컨택트>에서 중요한 건 대사가 아닌 몸이기 때문이다. 특히 3장 ‘Contact’ 속 노란원피스 김주원의 몸짓에는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답게 춤은 기본이고, 표정으로 극을 진행시켜간다. 꼿꼿하게 쳐든 고개와 걸음걸이에도 표정이 있다. 마이클 웨일리(장현성) 눈의 그녀는 도도하고, 춤을 출 때의 그녀는 활기 넘치고 사랑스럽다. 다른 댄서들이 몇 가지의 특징화된 표정연기를 보여주는 것에 반해 김주원은 표정에 인간사를 담아낸다. 그래서 단점이 있다면 계속 표정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환상에 노란원피스를 불러낸 웨일리 역의 장현성 역시 그동안 드라마에서 줄곧 선보였던 단편적인 캐릭터에 비해 무대에서 훨씬 더 자유로워보인다. “누구나 외로움에 의한 좌절과 수치심을 느낍니다”라는 정신과 의사의 메시지에만 유일하게 반응하는 굽은 등을 가진 그가 어렵게 손을 내미는 순간,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게 된다. “늦은 거 알아서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라는 마지막 대사는 이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컨택트>는 1월 1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1월 22일부터 31일까지 고양아람누리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