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심리 추리극, Like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지는 몰라도, <블랙메리포핀스>는 잘 만들어진(well-made) 작품이다. <메리 포핀스>라는 익숙한 동화를 끌고 와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었고, 뮤지컬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보기 드문 ‘스릴러’를 전면에 내세우며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나치정권아래의 독일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개인과 시대의 아픔을 다뤘고, 사라진 기억을 안고 사는 네 아이들의 고통은 알콜중독이나 공항장애 등 익숙한 방식으로 설정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희곡의 구조는 관객이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돕고, 배우 역시 자신이 가진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제공받는다. 겹겹이 겹쳐지고 뒤틀린 무대 전면과 사각의 회전 세트, 블루와 퍼플 톤으로 디자인되어 인물을 또렷하게 비추지 않는 조명, 파열음이나 비트감이 있는 음악들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미스터리를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2012년 초연 당시 한 대의 피아노만으로 연주되던 음악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함께 편성해 이것이 ‘비극의 잔혹동화’라는 것을 알린다. 여러 차례의 공연을 거치며 이야기의 화자가 첫째 한스에서 둘째 헤르만으로 옮겨져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엔딩으로 던져주면서 <블랙메리포핀스>는 인상적인 창작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작품은 영리한 방식으로 건축되었지만, 영리함이 항상 좋은 공연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레퍼런스를 찾아낼 수 있고, 무대라는 공간만이 특수할 뿐 ‘스릴러’라고 했을 때 연상되는 것 이상을 구현해내지 못했다. 게다가 유일한 여자 아이의 아픔은 누구나 예측가능한 방식의 기능으로만 쓰이면서 슬픔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남긴다.
왜 뮤지컬인가, Dislike
영리한 만듦새와는 별개로, <블랙메리포핀스>를 보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 있다면 ‘왜 꼭 뮤지컬이었어야 했을까’다. 뮤지컬의 법칙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뮤지컬을 선택했다면 <블랙메리포핀스>의 음악은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했어야 했다. 재공연을 거치며 나름의 편곡작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를 이끌고 인물의 심리상태와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을 보여주기에는 음악이 여전히 너무 단조롭다. 음악과는 별개로 나열되는 듯한 가사는 대사로서도, 가사로서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채 겉돌고, 가사를 지운다 해도 십여 개의 곡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블랙메리포핀스> 스스로도 음악이 있어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듯한 인상만을 남길 뿐이다. 송모멘트가 급작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안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본 듯한 안무들은 마임과 같은 형태로 나름의 상징성을 부여하지만, 극과 썩 어울리지 않는 방식의 안무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블랙메리포핀스>가 놓친 단 하나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그것을 담는 가장 적확한 그릇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