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심리테라피, Like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독거노인 엠마와 생활도우미 로봇 스톤이 며칠을 함께 보낸 후 엠마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 작품은 이 변화의 과정을 세심하게 다루며 작품을 상처 받은 한 여성의 심리테라피로 만든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에서 중요한 것은 대비다. 엠마의 이웃들은 쿵짝대는 음악에 맞춰 싱글 예찬을 하지만, 엠마는 집에 틀어박혀 느린 멜로디로 노래한다. “삶을 채찍질 하는 시간들 / 시끄러운 삶이여 어서 끝나라 / 지루한 인생아 지나가라 / 고단한 하루야 빨리 흘러가라.” 고인 물과 같은 엠마를 움직이게 하는 스톤이 밝고 경쾌하며 부드러운 톤으로 노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오는 스톤과 경계를 허물지 않는 엠마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조는 엠마가 묻어두었던 감정과 상처를 드러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 과정에서 박해림 작가는 일상적이되 구체적인 감정을 담은 가사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고, ‘독거노인을 위한 생활도우미 로봇’이라는 설정으로 흥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특히 박윤솔 작곡가는 극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의 음악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전거와 각종 상자, 의자 등이 층층이 쌓인 회색빛의 세트는 외면으로 가득했던 엠마의 지난 시간을 그 어떤 말보다도 충실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꼭 필요한 감정만을 담아내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더해져 관객은 오롯이 엠마가 겪고 깨닫는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죄책감과 두려움, 외로움과 무기력으로 가득했던 삶이 깨어나는 과정을 함께 느끼고 더불어 자신의 삶도 반추하는 결과에 다다른다. 창작초연임에도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공간에 가장 적합한 방식의 무대로 작품을 완성했다.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는 엠마 자신이 있을 거예요”라는 대사가 큰 울림으로 남는 것은, 한 인간이 겪어내는 다양한 형태의 감정을 섬세하고 충실히 담아내 감동으로 이어가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버나드라는 존재, Dislike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를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빈구석이 많다. 극이 결말에 다다르면 관객은 엠마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모르는 모호한 경계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엠마와 스톤의 관계는 생겨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차분히 바라보도록 하는 음악과 연출에 의해 탄탄해지며 서사의 큰 축을 담당한다. 스톤만큼 엠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다른 인물은 버나드다. 그의 존재는 개인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타인을 향한 관심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문장의 증명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관객은 버나드가 엠마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유추를 넘어선 관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쌍방향 소통이 드문 그에게서 행동의 이유와 성격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버나드를 통해 작품이 증명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다. 버나드가 구체화되면 될수록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한 개인의 심리테라피를 넘어 연대의 힘을 증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