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었습니다. 뭘 해도 중간 이하였고 별 열정도 없던 저를 뮤지컬이라는 멋진 장르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은 설도윤 대표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만류를 일축하고 저를 돈키호테로 만들어 준 것은 신춘수 대표, 데이비드 스완 연출의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서글서글하고 별 카리스마도 없을 것 같던 제가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윤호진 대표님의 믿음이었습니다.” 매년 준비해왔다던 A4 한 장짜리 수상소감을 웃음으로 시작했던 정성화는 한줄 한줄 읽어가며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뮤지컬 무대로 발걸음을 옮긴지 6년, 매번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언제나 조승우와 류정한에게 가려져 있던 정성화가 드디어 <영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순간이었다.
<영웅>의 5관왕, <모차르트!>의 3관왕
지난 6월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김소현, 박건형, 송용진, 정선아, 차지연, 홍광호 등 한국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렌트>의 ‘Seasons of Love’를 부르며 더 뮤지컬 어워즈의 문을 열었다. 4회를 맞은 이번 시상식에서 <영웅>은 정성화의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총 5개 부문에서 큰 활약을 보이며 진짜 영웅이 되었다.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영웅>은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해 호오가 갈리는 작품이지만, 취향과는 상관없이 제대로, 잘 만들어진 뮤지컬이었다. 불필요한 세트 대신 상징성을 강조한 벽과 영상, 조명으로 100년 전 이야기를 현실로 끄집어낸 박동우와 구윤영에겐 각각 무대미술상과 조명음향상이 수여됐다. “전생에 한국무사였다는 말을 할 정도” 한국과의 연이 잦았던 피터 케이시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편곡은 음악상을 받을 만큼 축하무대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통째로 잡아 흔들었다. 특히 시상식 당일 생일을 맞은 예순셋 노장 윤호진 대표의 연출은 시대를 반발짝 앞서나가며 젊은 창작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국내 창작뮤지컬에 <영웅>이 있다면, 라이선스 작품에는 <모차르트!>가 강세였다. 특히 <모차르트!>는 김준수에게 신인상을, 신영숙에게 여우조연상을, 김준수와 정선아에게 인기상을 수여하며 배우들의 활약에 손을 들어주었다. 해가 갈수록 주연상보다 더욱 치열한 조연상을 거머쥔 신영숙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이름이 영숙인데, 평범한 이름 신영숙이 오늘은 한국의 영숙이가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 외에도 4년 만에 킴을 다시 연기한 김보경은 <미스 사이공>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아 눈물의 수상소감을 발표했으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은 <컨텍트>로 “14년 만에” 신인상을 수상했다. 또한, 지난 한해 중극장 공연을 감행했던 <빨래>는 극본과 작사작곡 부문에서 승자였다. 이번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는 작품을 비트는 패러디는 물론 KBS <개그 콘서트>의 박성광과 허안나가 등장해 시상식과 축하공연 사이의 흐름을 원활하게 진행하는 등 작년에 비해 “진짜 뮤지컬보다 더 짜릿한 쇼”라는 콘셉트에 더욱 가까워졌다.
아이돌 팬을 무대로 끌어들이기 위한다면
하지만 한국뮤지컬시장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시상식을 찾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레드카펫 위를 걷는 배우를 향해 “누구야”를 연발했고, 일본팬을 비롯한 수많은 팬들은 <모차르트!>의 김준수가 레드카펫을 퇴장하자마자 우르르 자리를 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한국뮤지컬대상에 이어 최우수외국뮤지컬상을 받은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좋은 작품이 돈 많이 버는 세상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라는 의미심장한 수상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이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지만, 현재 국내뮤지컬시장은 심한 양극화현상을 빚고 있다. 2010년 돈 버는 뮤지컬은 정해져있다. 쉬운 스토리, 화려한 볼거리, 아이돌 캐스팅, 이 3박자만 갖춰진다면 흥행은 무조건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관객은 냉정하다. “아이돌스타가 나오는 날만 만석”인 시장 안에서 뮤지컬에 도전한 아이돌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을 단 한명이라도 더 유혹하고 싶다면, 작품 내부로 들어가 더욱 치열한 준비가 필요하다. 2009년 초연된 <영웅>이 5개 부문의 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5년간의 치열한 준비기간 덕분이었다.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 수상내역
최우수창작뮤지컬상 : <영웅>
최우수외국뮤지컬상 : <스프링 어웨이크닝>
베스트 리바이벌상 : <오페라의 유령>
소극장창작뮤지컬상 : <스페셜레터>, <연탄길>
연출상 : <영웅> 윤호진
안무상 : <금발이 너무해> 강옥순
무대미술상 : <영웅> 박동우 (무대디자인)
조명음향상 : <영웅> 구윤영 (조명)
작사작곡상 : <빨래> 추민주, 민찬홍
극본상 : <빨래> 추민주
음악상 : <영웅> 피터 케이시 (편곡)
남우주연상 : <영웅> 정성화
여우주연상 : <미스 사이공> 김보경
남우조연상 : <스프링 어웨이크닝> 조정석
여우조연상 : <모차르트!> 신영숙
남우신인상 : <모차르트!> 김준수(시아준수)
여우신인상 : <컨택트> 김주원
BC LOUN.G 인기상 : <모차르트!> 김준수, 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