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의 좁은 뒷골목에는 겨우 열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 마스터는 손님들에게 계란말이나 야끼소바 같은 추억의 음식을 선물처럼 만들어주고, 그들은 자연스레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음식을 먹는다. 짧은 몇 분의 시간에 하루의 피로는 기적처럼 사라지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일본에서 시작된 이 작지만 거대한 식당이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의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 개업했다. 이름은 뮤지컬 <심야식당>. 마스터의 영업방침을 거스르지 않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죽을 빚어 음식을 만들어낸 정영 작가, 김혜성 작곡가, 김동연 연출을 <텐아시아>가 만났다. 각기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은연중에 음식과 관련된 단어를 내뱉는 세 사람에게서는 마스터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마스터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업시간은 밤 8시부터 10시경까지. 손님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와.
만화 <심야식당>은 한국에서 인기가 많기도 했고 특유의 위로와 깊이감 때문에 많은 이들이 무대화를 탐내던 작품이었을 것 같다. 어떤 지점에서 크게 끌렸나.
정영: ‘원하는 음식 다 만들어줄게’라는 말에 이 사람 미쳤나봐 싶었다. 어우 눈물이 핑. (웃음) 결혼을 해도 애가 있어도 애인이 아무리 잘해줘도 인간은 원래 외롭다. 대신 <심야식당>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슬퍼하지 않고 ‘너도 그렇지? 나도 그래. 그러니까 내가 니 얘기 조금 들어줄게’ 라고 한다. 요즘 자꾸 멈추면 보인다고 그러고 자기를 돌아보라고 그러는데 <심야식당>이 딱 그런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상이 있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자살하고 그러지 않잖아. (웃음) 그냥 다른 사람 만나면 되지.
김동연 연출은 최근 <파리의 연인>,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드라마 원작의 뮤지컬 작업을 많이 했는데 드라마와 만화의 차이가 있나.
김혜성: <무한도전>도. (웃음)
김동연: 아, 그것도 윤종신 씨가 작곡한 ‘영계백숙’이 있었네. (웃음) <파리의 연인>은 협력연출이라 작품을 크게 좌지우지한 건 아니고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급하게 준비하느라 아쉬움이 좀 남았다. <심야식당>은 만화라서가 아니라 두 작품에 비해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좀 더 깊은 맛이 나는 소재였기 때문에 좋았다. 공연 장르는 오래갈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데, 드라마는 유행을 타고 쉽게 볼 수 있는 장르라 무대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심야식당>은 만화도 드라마도 있지만 한 편씩 아껴서 보고, 소중하게 자기 것이라고 간직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게 부담이기도 했지만 누구나 다 봤던 드라마나 만화였다면 조금은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심야식당스러움은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인 것”
작품 개발을 3년간 했는데, 진행하는 동안 대체 이걸 왜 뮤지컬로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정영: 큰 사건은 없고 등장인물은 너무 많고. 음식이 백사십몇 개나 되는데 그걸 어떻게 할까 많이 궁금했을 거다. 말이 많지 않은 만화 속 말줄임표들이 강요하지 않는 감동의 정서로 음악이나 춤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말이 많았으면 연극을 했을 거다.
김혜성: 우리가 먼저 저작권을 사서 못하게 됐지만 실제 연극으로 준비하고 있는 팀도 있었다. 심야식당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올림으로써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같이 들으면서 웃고 울면 재밌겠다 싶은 확실한 의지가 있었다.
김동연: 연극은 대사를 하면서 정서를 쌓아가고 훨씬 더 사실적이어야 하는데 원 텍스트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연극으로는 어렵다. 일본드라마 역시 침묵하는 시간이 꽤 길었고, 그 자리를 OST가 매웠다. 상식적으로 뮤지컬은 화려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서 소박한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여백을 음악으로 채우고 사연들이 음악을 통해 나오고 사라지는 구조의 뮤지컬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주요 캐릭터만 10명이다. 오히려 게이 코스즈와 야쿠자 켄자키 류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다면 더 쉽게 풀렸을 텐데.
정영: 더 쉬웠을 거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지 심야식당의 이야기는 아니다. ‘심야식당스러움’은 어떤 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거다. 등장인물이 많은 건 내 욕심일 수도 있는데, 식당에 사람이 얼마 없는 것도 이상하잖아. (웃음) 대신 그 둘의 이야기와 스트리퍼 마릴린의 이야기로 작품을 열고 닫는 구조를 만들고, 여러 사랑이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행복해지는 마릴린을 통해 기승전결을 잡았다.
김동연: <심야식당>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 공간에 대한 의미와 마스터를 중심으로 세워놓은 극을 위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흐르면서 점점 젖어드는 공연을 만들어야 했다. 호흡과 템포, 리듬을 살리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인물 중에서 뮤지컬에 들어갈 캐릭터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나.
정영: <심야식당>에 나오는 인물들은 직업이 어떻든 간에 모두 슬픔을 가진 길고양이 같은 존재들이다. 마스터가 내어주는 음식을 먹고 돌아가는데 그런 인물들에 마음이 간다.
김동연: 리딩 때는 없었다가 본 공연에 들어온 캐릭터 중에 엔카 가수 치도리 미유키가 있다. 해피한 느낌으로는 인생의 여러 맛을 보여주는 게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죽여서 안타깝지만 해피하지 않은 인생도 있어야 전반적으로 인생의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추가했다.
극이 소소한 만큼 주위를 환기할 목적으로도 음악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을 것 같다.
김혜성: 처음엔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맘껏 음악적 기량을 뽐낼 수 있는 텍스트는 아니었다. 또 그래서도 안 되고. 그래서 힘을 싣기보다는 빼는 작업이 더 많았다. 대신 캐릭터에 맞는 음악으로 다양하게 풀었다. 치도리 미유키를 통해 일본색을 넣을 수 있었고, 오차즈케 시스터즈는 시끄럽고 재밌는 캐릭터라서 빠른 템포의 곡으로 만들었다.
작곡가로서 욕심나는 부분은 없었나.
김혜성: 옛날에는 욕심을 많이 부렸는데 요즘은 좀 그렇지 않게 되더라. 마스터가 <맨 오브 라만차>의 ‘Impossible Dream’ 같은 대단한 아리아를 뽑지도 않고, 음악이 극에 묻혀서 그게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음악만 떼어놓고 봤을 때 돋보이지 않으니까. 이번에 <레미제라블> 보면서 나도 저런 거 쓸 수 있는데 안 시켜준다며 막 울었다. 아하하하하. 코스즈는 게이 캐릭터니까 <파리넬리> 같은 하이는 한 번 쳐줘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고음이 거의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극과 동떨어진 곡은 가짜고, 극음악은 극음악이어야 한다.
하지만 뮤지컬인데 MR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았을 것 같다.
김혜성: 엄청난 음악을 만들려면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웬만하면 창작 초연이니 라이브 하고 싶은데 하게 되면 제작비 상황상 2-3악기밖에 못 쓰고, 그것으로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다 보여줄 수 없다. 난 주로 가난한 창작뮤지컬을 했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구상했던 것을 완벽하게 구현해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내가 굉장히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항상 음악에 투자를 좀 더 해주고 초연 때 CD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지켜진 적이 없다. 내가 만들었지만 웬만하면 잘 보고 싶지가 않다 마음이 아파서. 내 돈이라도 끌어와서 하고 싶은데 내 돈이 없어. (웃음) CD 하나 만들려면 3000만 원 드는데 지금 내 돈 1000만 원도 없다. 문화부장관을 해야 해소가 되나. (웃음)
제작사가 아닌 창작진이 먼저 작품개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문하는 요리는 다’ 같은 곡에서 ‘바람처럼’이라는 가사 뒤로 실제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등의 디테일들이 살아있더라.
정영: 아무래도 제작사에서 먼저 시작하는 경우엔 일정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쫓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창작진들이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굉장히 고팠다. 사실 공연이 될지 안 될지 모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지만, 3년간 창작하는 사람들이 계속 쌓아왔기 때문에 그런 디테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혜성 작곡가와는 <총각네 야채가게> 2.0에서 만났는데 곡이 참 예쁘고 가사도 잘 파악한다.
김혜성: 나는 음악이 장면과 가사를 잘 살리고 관객들도 잘 듣게 하고 싶다. 아이돌가수 카자미 린코가 부르는 ‘방해방해 척척박사’ 같은 곡은 작가님은 유치한 걸 부끄러워하시는데 난 그런 거 전문이라서 (웃음) 가사보다 좀 더 오버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칙칙 칙칙칙- 이런 것도 실제로 해보면서. 마릴린의 ‘명란젓 song’도 가이드 녹음할 때 재밌을 것 같아서 ‘우리 그이 입술은 명란젓’ 끝에 캬아~ 라고 했는데 그것도 살았다.
김동연: 관객들은 잘 모르겠지만, 엔카에는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 연주자의 실제 연주가 들어가 있다.
연출은 어느 정도 작품이 개발된 이후에 붙은 케이스였는데, 첫인상이 어땠나.
김동연: 합류하고 나서야 만화랑 드라마를 봤다. 그래서 초반에는 굉장히 객관적이고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하하하하. 대극장 뮤지컬로 갈만한 콘텐츠도 아닌데 등장인물이 13명 막 이랬었다. 아무리 공연이 좋아서 소극장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수지타산에 안 맞고.
“똑같은 음식은 아니어도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작년 초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선보인 리딩공연은 무대를 가운데에 두고 삼면이 객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정말 식당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현재는 무대가 커지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정영: 마스터가 계속 손님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구성인데 지금은 무대에서 갭이 생기다 보니 마스터가 내레이터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냄새도 좀 더 나고, 음식도 바로 나눠 먹을 수 있는 극장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다. 관객을 식당 손님처럼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연말에 극장 잡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이걸 공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땡큐였다. 다음엔 좀 더 작은 극장에서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작자 입장에서 본다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김동연: 살짝 내려다봐야 마음도 편하고 음식들도 보일 텐데 동숭홀이 올려다보는 무대라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마스터가 음식을 올려놓으면 거기에 조명이 떨어지고 그 음식이 사라져도 조명으로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디테일이 잘 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김혜성: 2층이 로열석이다. (웃음)
대신 그런 한계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세트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김동연: 같이 식당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골목 안에 있는 식당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뷰를 바꿨다. 골목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식당으로 들어오고 그런 그림. 이토 마사코라고 일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무대디자이너가 참여했는데 그릇, 가스레인지 소품 하나하나 진짜 일본 식당에서 쓰고 있는 사실적인 디테일을 살렸다.
그래서인지 치도리 미유키 공연 때 쓰인 플래카드까지도 일어로 적혀있다. 어느 정도 한국 정서에 맞게 변환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김동연: <심야식당>은 약간 동화 같은 느낌이 있다. 저 안에 있는 인물이 멀지만 나랑 비슷한 느낌. 지금 여기는 신주쿠 뒷골목인데 종로 뒷골목으로 왔다면 좀 더 격렬해지고 적극적인 느낌은 주겠지만 지금과 같은 걸러진 느낌은 없을 거다.
김혜성: 어떤 분이 트위터에 이렇게 독도나 여러 가지로 예민한 시기에 왜색 짙은 뮤지컬을 꼭 해야만 되나 불편했다는 말을 썼더라. 하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문화로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동연: 한국 사람이라고 꼭 한국이야기만 써야 하나. 셰익스피어는 덴마크, 스코틀랜드 이야기 쓰고 그런다. 유럽은 다 다른 나라임에도 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에 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 거부감을 느끼며 보는 시대도 지났고, 우리 세대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음식들이 100% 일본음식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닌 것도 그런 이유겠다.
김동연: 계란말이나 비엔나소시지는 진짜 도시락 반찬이기도 했다. 비엔나소시지가 아니고 무말랭이였더라도 우리 엄마도 저런 거 싸줬지, 라고 공감할 수 있다.
김혜성: 무말랭이였어요, 비엔나소시지 였어요?
김동연: 우리 집은 내가 야채를 잘 안 먹어서 볶음밥을 싸주셨어. (좌중폭소) 각자의 추억이 있는 음식을 끄집어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오히려 진짜 한국이었다면 그 음식 자체가 강렬해서 자기 것을 꺼내기 어려웠을 거다.
정영: 치매 어머니가 해주는 감자샐러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는 관객들도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거나 사이가 안 좋으면 꼭 엄마 음식을 그리워한다. 카자미 린코의 야끼소바도 그런 식이다. 부모님 얘기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딱 맞는 배우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아우라가 가장 중요한 마스터와 페이소스가 있는 코스즈는 어떻게 찾았나.
김동연: 마스터의 경우 대단한 가창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빛나는 그 아우라 때문에 너무 어려웠다. (웃음)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도 찾아봤는데 쉽지 않았다. (송)영창 선배님은 리딩부터 같이 했고, (박)지일 선배님은 운 좋게 섭외가 돼서 거의 마지막쯤에 합류했다. 일본드라마의 마스터는 좀 젊고 미중년의 이미지였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임기홍은 배우로서의 역량이 몸을 쓰는 게 워낙 능해서 멀티맨 같은 재밌는 캐릭터를 주로 했는데, 평상시에는 굉장히 섬세하고 조심스럽고 그 어떤 배우보다 감수성이 더 많기도 하다. 코스즈가 마냥 웃기는 사람도 아니고 밤거리의 외로움과 고독을 아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배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정서적인 부분을 꺼냈으면 싶어서 같이 하게 됐다.
반면 박정표나 최호중이 맡은 멀티 역은 기존의 멀티맨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김동연: 소극장에 멀티 캐릭터가 들어온 이유는 다양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장소의 변화를 사람이 해주는 기능적인 역할도 있다. 비행기를 만들 수 없으니 스튜어디스 옷을 입히면 비행기 안이 되는 식이다. 그래서 그 인물 자체가 어떤 감정선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표나 호중은 <김종욱 찾기>에서도 멀티맨을 했었지만, 지금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나오는 거라 많이 힘들어한다. 웃기고 까부는데도 다 스토리가 있어서.
김혜성: 배우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기도 한 게 한 명 한 명 주인공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굉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몰아넣고도 조금씩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이게 그냥 스쳐 가는 게 아니라서 굉장히 중요하다. <심야식당>은 실력 있으면서도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인성까지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웃음)
“시즌2보다 지금 버전의 발전을 모색하는 게 먼저다”
그런 인물들이 모두 모여 대게를 나눠 먹는 엔딩이 참 좋았다.
정영: 우린 짠! 하고 끝낼 수도 없고 마무리를 예쁘게 잘 짓는 게 중요했다. 커튼콜도 소박하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끝이 뭐 이래 할 수도 있지만, 어쩌다 한 번 보는 공연일지도 모르는데 그냥 따뜻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 인물들의 사건을 더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며 극을 썼다. 내가 만약 다 표현을 못 했으면 (웃음) 관객 여러분이 그 인물의 마음을 더 봐주셨으면 좋겠다.
메인 테마곡인 ‘심야식당’에도 그 정서가 잘 묻어난다. 스타카토로 끊어지며 속삭이듯 노래하는 ‘심.야.식.당’ 부분이 특히 그렇다.
김혜성: 대본을 보면 여러 곡이 떠오르는 게 있는 반면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건 그 ‘심야식당’이 떠올랐다. 서곡이고 첫 곡이면 굉장한 스케일을 갖기도 하는데 그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어떤 한 부분처럼 되게 소박하다. 가장 먼저 써서 두 분께 들려드렸더니 별 반응이 없더라고. (웃음)
김동연: 아무 얘기 안 했으면 좋았다는 거다. (웃음) 작게 속삭이며 소중한 공간이라 얘기해주는 그 느낌이 음악적으로 잘 표현됐다.
많은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넣어서 아쉬운 캐릭터들이 있나.
정영: 지금도 많은데 더 넣고 싶은 인물들이 너무 많다. (웃음) 양념장 끼얹은 두부를 먹는 청각장애 호스트가 있다. 인기가 굉장히 많은 인물인데 테크닉이 좋아서가 아니라 얘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럽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점이 너무 심야식당스러웠다.
김혜성: 그 호스트 이야기는 곡까지 다 나왔고 수화로 할 생각이었는데 빠졌다. 나는 이국적으로 생긴 연출님과 딱 맞는 캐릭터를 넣고 싶었다. <김종욱 찾기>의 ‘아차아차 인디아’처럼 너무 재밌는 곡이 나올 것 같았다. (웃음)
김동연: 중간에 저 뮤지컬 합니다 하고 들어왔다가 아, 안 되겠네요 하고 나간 캐릭터들도 많았다. 지금은 버터 라이스를 마스터가 먹지만 원래 버터 라이스를 좋아했던 유랑악사 고로 씨도 출연 확정됐다가 나가고. (웃음)
쟁여놓은 음악들이 많겠다. (웃음) 시즌2를 기대해도 좋을까.
김혜성: 요게 잘 되면 여름에 냉모밀과 함께. (웃음) 돈을 좀 더 들여서 라이브를 하게 되면 좋은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좀 더 좋은 환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계속 열심히 하면 후배들은 나보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테고 그것 자체로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김동연: 지금 버전의 발전을 모색하는 게 먼저다. 텍스트와 음악을 완성하는 기간은 길었지만 공연 자체를 완성시키는 데는 2달이 채 안 됐다. 그리고 3개월간 관객을 만난다. 외국에서는 프리뷰 기간이지만 창작뮤지컬에서 누가 그런 걸 용납해주나. 연출로서는 여러 에피소드를 왜 모아놨는가에 대한 이유를 관객들이 알 수 있는 장면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쁘게 못 만들어서 빠진 장면이 있다. 그런 걸 보강해서 심야식당 공간 안에 겹쳐진 시간이 보이면 좋겠다.
단순하겠지만 계절변화가 보이면 좋을 것 같다.
김동연: 그런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 근데 사실 식당에서 여러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가 나오는 구조인데 그게 꼭 시간 순서대로 나오는 건 아니다. 그날의 감정과 음식에 따라 위로를 하는 과정이라 고민이 된다.
마지막으로 진짜 심야식당이 있다면 시켜보고 싶은 추억의 음식이 있나.
정영: 버터스프. 우리 엄마만 하시던 음식이었는데 어릴 때 아프면 꼭 해주셨다. 지금도 아프면 생각이 난다.
김혜성: 할머니가 해준 모든 음식.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손에 컸는데, 할머니는 찬밥을 드시고 나한테는 늘 돌솥밥을 해주셨다. 총각김치도 너무 잘하셨고, 간식으로 약식도 만들어주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추억의 음식이 된 것 같다. 다시는 먹을 수 없으니까. 이제는 할머니가 그리울 때 할머니 보고 싶다, 라는 말보다 할머니가 해준 약식 먹고 싶다, 라는 말을 하게 된다.
김동연: 육개장.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순천에 살 때는 집밥을 주로 먹었다. 일반 식당에 무슨 메뉴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외식도 안 했고. 그러다 실기시험 보기 전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육개장을 먹었는데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혼자 하는 서울생활이 이런 맛인가, 스무 살의 시작이구나 싶었다.
김혜성: 오늘 육개장 한 그릇 하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