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를 찾게 한 연출, Like
이지혜 작곡가가 웹툰 <무한동력>에서 소극장 뮤지컬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숙집이라는 고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무대 예술에 적합했다. 1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각기 다른 여섯 인물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표현하기 좋았다. 지금의 청년세대의 고민을 담은 서사와 무대 미술로 구현하기 더없이 좋은 무한동력기관이라는 판타지 강한 소재까지. <무한동력>은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선재의 성장을 그린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3년 전의 초연은 하고 싶은 게 많아 도리어 길을 잃은 격이었다. 이번 공연은 ‘선재의 성장’이라는 큰 그림을 위해 이야기를 재배치하고 주변 캐릭터를 더욱 다졌다. 공연이 시작되면 선재는 극장 구석구석을 돌며 집을 찾고, 괴짜로 보이는 수자네 하숙집 식구들을 만난다. 이들은 뿅뿅거리는 게임 음악 같은 곡 위로 정체불명의 춤을 추고 쉴 틈 없이 게임을 해대며 선재와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반원형태의 무대를 빙 둘러선 인물들은 관객과 눈을 맞추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이들을 극에 참여시킨다. 덕분에 무장해제 된 관객들은 창작진이 준비한 웃음포인트에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계속된 실패에도 수자네 하숙집 사람들처럼 긍정의 기운을 잃지 않는다. 원식의 무한동력기관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명랑만화처럼 의도를 정확하게 살린 연출 덕에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다채로운 음악이다. 록부터 랩, 컨트리, 발라드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이 매력을 맘껏 뽐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겟세마네’, <맨 오브 라만차>의 ‘임파서블 드림’을 차용한 패러디도 유머의 한 축으로 기능한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연출의 중요성을 어필한 작품.
여전히 급한 후반부, Dislike
선재를 포함해 수자네 하숙집 식구들의 성장에 가장 큰 계기가 되는 것은 역시 원식의 사고다. 죽기 전에 이루지 못한 꿈보다는 못 먹은 밥이 생각날 거라던 선재는 ‘자소설’이 아닌 진심을 담은 자기소개서를 쓴다. 수시 면접장에서 아빠의 무한동력기관을 부정하며 합격한 수자는 같은 이유 때문에 아빠를 응원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동의 반항도 사고와 함께 끝이 난다. 문제는 이 변화의 과정이 급작스럽다는 데 있다. 물론 생동감 있는 연출 덕에 관객은 자연스레 선재의 서사를 따라온다. 다만 선재와 수자에게 주어진 곡은 각각 1곡씩뿐이고, 배우들은 이 짧은 솔로곡으로 변화의 스펙트럼을 보여줘야만 한다. 극 초반 작품의 정서를 만드는 데 쏟은 공에 비하면 구체성이 결여된 후반부는 매우 성기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푼 듯한 조급함도 디테일 부족에서부터 발견된다. 하지만 <무한동력>의 2차 실험은 1차 실험에 비해 “한 걸음만 더” 나아간 것이 분명하다. 다음 3차 실험이 기대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