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의 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남편이 사망한 후 가장이 된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의 다섯 딸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한다. 페페 로마노라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세 딸의 감정이 큰 축을 담당하지만, 설명만큼 간단한 작품은 아니다. 억압받는 여성들의 절규와 서로 다른 세대의 대치와 뜨거운 욕망으로 가득한 <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스페인이라는 시공간을 벗어나 2018년의 한국과 닿는다. 여성에게 강요된 왜곡된 역할과 의무에 대한 비판은 스페인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원작에서,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은 미국의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음악에서부터 시작된다.
레플리카 프로덕션으로 소개되지 않는 이상, 좋은 원 소스가 있다 해서 모두가 좋은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베르나르다 알바>는 초연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것이 완성형이다. 거대하고 단단한 문과 몇 개의 의자는 폭압으로 가득한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단박에 설명한다. 문틈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붉은 빛과 검은 상복 안에 덧대어진 붉은 천의 의상은 고립되어 있는 여성들이 뜨겁게 간직해온 모든 것을 상징한다. 넓은 치맛자락이 플라멩코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통일된 톤앤매너를 지키되 다양한 형태와 소재로 디자인된 서로 다른 의상은 여성 열 명의 성격과 계급을 그려낸다. 그 옷을 입은 채 부르는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노래들은 가사가 없이도 단번에 감정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배우들이 구두와 손뼉을 이용해 만든 리듬을 깨끗하게 담아내는 음향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야말로 무대 위와 밖의 모두가 공통된 하나의 정서와 목표를 향해 가열차게 달린다. 적절한 템포의 긴장과 이완이 더해진 작품은 모던하고 기품을 잃지 않는다.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모든 장면이 인상적인, ‘종합예술’로서의 매력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뮤지컬.
단 3,000명만을 위한 무대
<베르나르다 알바>의 유일한 단점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짧은 공연기간이다. 젠더 이슈로 뜨거운 2018년에 오로지 10명의 여성 배우들만이 무대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흥행은 애초부터 예상되었다.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 온 배우들이 캐스팅된 데다가 드물게도 10명의 배우 모두가 원캐스트로 진행되는 공연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작품이라는 것도 컸다. 하지만 우란문화재단은 그런 예상에도 최상의 작품을 위해 객석을 포기하는 강수를 둔다. 1회당 <베르나르다 알바>가 수용하는 관객은 160여 명에 불과하다. 공연 개막 전부터 20회차 분 3,000여 장의 티켓은 동이 났다. 프레스콜과 개막 이후 입소문을 타며 오래전부터 공연을 봐온 관객부터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은 새로운 관객까지 티켓을 찾아 헤맨다. 특히 10명의 배우는 작품에서 중요하게 기능하는 플라멩코를 6개월이나 연습했고, 이들의 합은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더욱 쫀쫀해질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연장 공연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그마저도 불투명해 보인다. 그 어떤 공연보다도 ‘피켓팅’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공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