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대하는 시선이 변화하면서, 동물을 지칭하는 단어도 인간 중심의 ‘애완’에서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반려’로 달라졌다. 반려, 짝이 되는 동무. 반려동물을 키우는 한재은·박현숙 두 창작자 역시 인간과 동물이 일상을 함께 하며 느낀 소소한 감정과 사건을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에 담았다. 특히 작품은 주인공을 동물로 설정해 동물의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도베르만 랩터와 길고양이 플루토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 서로 다른 생김새만큼이나 각자가 지낸 장소와 경험, 인간에 대한 감정도 다르다. 인간과의 친밀감을 쌓아온 랩터는 애틋함을, 친구를 잃은 플루토는 인간을 향한 분노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둘은 친구가 된다. 둘에게는 반드시 찾아야 하는 인간이 있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랩터와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플루토의 약점이 상대를 통해 보완되기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전지적 동물 시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14개의 미니어처와 액션캠을 이용한다. 개와 고양이가 된 배우들은 카메라를 들고 무대를 이동하며 사물을 비추고, 그렇게 찍힌 영상으로 관객은 두 동물의 동선과 그들이 바라보는 것을 보게 된다. 동물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인간 중심의 익숙한 사고도 전복한다.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과정은 “납치”로 설명되고, 인간이 그렇듯 동물도 자신과 가까운 인간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전복의 쾌감은 언어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동물의 언어는 자유롭지만, 인간의 언어는 뭉개져 들린다.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우선적으로 들리는 말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플루토는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단어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이런 과정을 통해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기쁨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플루토와 인간이 가까워지는 과정이 랩터가 이미 경험한 세상이라면, 주인을 찾지 못하는 랩터의 상황은 플루토의 세상이다. 길과 집을 오가며 랩터는 주인을 향한 그리움과 친구를 지키기 못했다는 죄책감을, 플루토는 동료를 죽인 이들을 향한 분노와 인간의 보살핌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보여준다. 둘은 경험을 통해 서로의 행복과 아픔을 공감하며 각자의 입장에 서서 상대를 배려한다. 구체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작품은 대체적으로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따스한 손길을 그린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악랄한 현실도 외면하지 않는다. 검은 개와 검은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 학대와 살인으로 이어지는 범죄가 그것이다.
끝까지 주인을 지키는 동물과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 과연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종인가?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성을, 혐오로 가득한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달라진 프리즘으로 본 진실은 간단하다.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은 구체적인 언어보다도 목소리의 톤과 크기이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것. 어쩌면 개와 고양이는 인간의 스승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