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열일곱 무렵엔 ‘오빠’가 탄 밴 앞으로 뛰어들기도 했고, 스물하나 무렵엔 선배들 몰래 남자친구와 키스를 나누기도 했지만, 스물아홉 무렵엔....모든 게 다 쉽지 않다. 더 이상 세상 모든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버리는 나이. 오묘하게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피 칠갑으로 쌓아올린 겉모습에 비해 마음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버린다. 겁은 점점 많아지고, 점점 더 여려지기 일쑤이며, 그 어떤 것에도 ‘척’하고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래서 스물아홉의 기묘한 심리를 그리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 속 첫사랑을 찾는 여자, 김지현이 궁금했다. 그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김지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지. “<김종욱 찾기>에 대해 수다 떠는 거 좋아해요”라며 환하게 웃던 그녀는 이제 극에서도, 실제 삶에서도 문제적 나이를 맞이했다. “잘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더라”며 2004년부터 이어진 지난 5년의 인연을 회상하던 그녀와 <김종욱 찾기>에 대한 긴 수다를 나누었다.
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첫 가출’을 시도했던 여자가 인도에서 만난 첫사랑을 7년째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생을 군인신분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첫사랑을 찾아 나서게 되는 이야기를 그런 작품이 바로 뮤지컬 <김종욱 찾기>다. 2004년 장유정 작가의 한예종 과제작에서부터 시작된 이 작품은 2006년, 학교를 벗어나 열악한 창작뮤지컬계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쑥쑥 커오고 있다. 3명의 배우로 이루어진 <김종욱 찾기>에서 김지현은 2007년부터 이번 시즌까지 첫사랑을 찾아 나서는 여자 역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녀가 실제로 ‘김종욱을 찾습니다’라는 대자보까지 만들어 학교 곳곳에 붙였던 작품과 마주한지 벌써 5년이다. 특히 배우의 이름이 곧 캐릭터 이름이 되는 작품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겁은 많아지고, 씩씩한 척 하지만 더 많이 외롭고 바보 같아지는 모습”에 배우, 인간, 캐릭터 김지현의 3가지 역할이 점점 더 비슷해진다고 말한다. 스물넷에 시작했던 작품 안에서 어느새 그녀는 스물아홉이 되었고, “초반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애’라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때와는 달리, 이젠 정말 좋은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녀안의 변화도 생겼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김지현은 그렇게 작품 안에서 함께 성장해왔다. “누구나 한번쯤은 짝사랑이든 연애든 다 해보잖아요. 과거의 내 사랑은 어땠나, 앞으로 난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지금 현재의 나는 어떤 감성을 가지고 살고 있나 라는 걸 생각해보게 해주는 것 같다”며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지금의 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이제 저도 만만치 않네요”라며 웃던 김지현은 그간 함께했던 김재범, 김무열, 이율, 강필석 등 9명의 훈남배우들과의 만남을 “괴롭게 했던 것마저 보고싶어지더라구요”라며 옛애인마냥 그리워했다. 얼마 전 강필석의 마지막 공연에서도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그녀는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기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소극장 뮤지컬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올해 김지현은 4월까지만 첫사랑을 찾고, 6월부터는 2009년 상반기 최대 기대작인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에 “학교도 잘 안 다니고 떠돌이생활을 하는” 보헤미안 일세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동안 평범한 스물아홉으로 살던 김지현은 이제 부모의 폭력을 피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열아홉으로 돌아간다. 이제 열아홉이 되었으니 더 쉽게 ‘척’하고 손을 내밀 그녀를 만나고 싶다.
베스트넘버
‘결심’
김지현은 “아직도 잘 못 불러서 미안하고 애착이 가는 노래”라고 웃으며 ‘결심’을 <김종욱 찾기>의 베스트 넘버로 꼽았다. 이 넘버는 첫사랑 김종욱과 인도에서 이별할 때 부르는 곡으로, 상처받기 싫어 새로운 사랑에 두려워하는 여자의 마음을 노래한다. “이 노래가 작품 주제를 말해주기도 하고, 부르면서 제일 공감이 많이 되요. 근데 연애경험이 없던 여자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건 너무 조숙한 것 같아요. 22살에는 공항에 나가서 김종욱을 만나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그렇게 한 1년간 연애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어야 되지 않나”라며 웃는다. 작품 속 “상처는 추억의 또다른 이름입니다”라는 대사처럼, 당신의 상처는, 그리고 사랑은 지금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