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연화와 경주, Like
원작 영화나 뮤지컬이나 [국경의 남쪽]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단연 연화다. “내가 언제 곡사포 쏘는 거 봤습니까.” 연화는 늘 직진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맡은 일은 똑부러지게 해내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우물쭈물하는 선호가 무안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흔들리는 선호를 안심시키고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것, 역시 연화다. 여기에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뮤지컬의 연화를 시원시원하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북에 연화가 있다면, 남에는 경주다. 일상의 고단함이 묻어나던 영화 속 경주에 비해 뮤지컬의 경주는 제 감정을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며 훨씬 더 경쾌해진 인물로 등장한다. 사실 [국경의 남쪽]은 전형적인 3각 관계 서사로 진행되고, 연화는 문자 그대로 사랑을 찾아 목숨을 건 여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에 남는 것도, 탈북을 하는 것도, 선호를 떠나는 것도 연화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작품에서 한 남성을 사이에 둔 두 여성은 남성의 선택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곤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는 연화와 경주는 이 전형적인 3각 관계 안에서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장르의 특성상 생기는 서사의 빈틈은 이나오 작곡가의 음악이 촘촘히 채운다. 선호와 함께 “사계절은 언제나 우릴 맴돌고 우리는 제자리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꿀 수 있는 내일을 살아갈 거야”(‘봄 여름 가을 겨울’)라 노래하지만 이별을 결심한 채 부르는 연화의 목소리와 눈빛, “혼자 연주 못하는 노래 혼자 채울 수 없는 마음 이제는 나랑 함께 할래요”(‘나랑 할래요?’)라는 경주의 수줍은 용기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연화와 경주가 영화의 산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10년 사이 변화한 사회상에 맞춰 캐릭터를 재정립하고 음악으로써 그들의 서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건 단연 뮤지컬이 일궈낸 업적이다.
사라져버린 서울예술단만의 색, Dislike
분단과 탈북이라는 소재 상 [국경의 남쪽]은 무거운 신파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가벼운 터치에도 탈북의 과정, 서울 정착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영화 역시 어쩔 수 없이 우울한 정서가 배어나온다. 특유의 우울감을 없애기 위해 추민주 연출은 과장되거나 순수를 넘어 순진한 모습의 선호 가족을 통해 극에 활력을 주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새터민을 향한 조롱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빨래]로 현실의 절망을 딛고 따뜻한 희망을 노래했던 그는 정서를 움직이는 다양한 음악을 통해 극 전체의 밸런스를 맞춘다. 어설픈 바이브레이션으로 간증하는 선호의 모습에서는 서울살이의 버거움이, 멀리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선율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선호·연화·경주가 함께 부르는 ‘나는 여기 너는 거기’는 ‘여기’와 ‘거기’만으로 배가된 슬픔을 전한다. 신파나 동정 혹은 조롱의 선을 가뿐이 넘으며 모두를 따스하게 안는 [국경의 남쪽]은 창작뮤지컬 초연이자 한국의 고대사를 주로 다뤘던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서울예술단을 [바람의 나라]·[잃어버린 얼굴 1895] 등이 보여준 군무로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극 안에 스며드는 정도로만 구현된 이번 작품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선호 가족의 탈북과 연화의 공연을 교차 편집하듯 보여주는 극 초반 태양절 행사가 재연을 위한 키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