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이희준, 곽도원, 진경. 최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주목을 받은 이들의 공통점은 연극이다.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오랫동안 빚어왔던 이들이 좀 더 넓은 세상의 빛을 보는 중이다. 하지만 새로운 얼굴을 찾기 위해 많은 제작자들이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기웃거리고, 다양한 기회의 동아줄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키는 이들이 있다. 지난 9월 13일 시작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하 <욕망>)에서 블랑쉐 역을 맡은 김소희는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지켜왔고, 비극적이고 강렬한 캐릭터를 예민하고 섬세한 칼로 저며내 표현해내는 그녀의 캐릭터는 언제나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존재가 있으나 마나한 느낌이 들 때 연극은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는 말로 그 사랑을 고백한다. 여전히 뜨겁게 연극을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을 줄 아는 김소희와의 대화는 연극을 넘어 지속가능한 무엇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연희단거리패 26주년 기념공연인 <욕망>이 10월 초 연장공연에 들어갔다.
김소희: 이렇게 연극이 공급과잉인 시대에 대학로 중심도 아니고, 대단한 영화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배종옥 씨도 아닌데 (웃음) 연장까지 갈 수 있었다니 매일이 감사다. 그러니 매 공연을 허투루 할 수가 없다.
그동안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비극, 전통연희 등을 주로 하던 극단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미국 희곡이라고 들었다.
김소희: 우린 주로 전통과 관련된 걸 많이 했다.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하더라도 한국적 퍼포먼스를 가미하거나 지역을 바꾸는 식으로 작업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 희곡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극단과 연을 맺고 계셨던 채윤일 선생님이 이 작품을 게릴라 극장(대학로에 위치한 연희단거리패 극장)에서 4명이 하는 심리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셨다. 원래는 거의 4시간짜리 대본인데 일상성을 빼고 심리에만 집중하자니 스토리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관객들이 따라올 수 있는 선 정도로 절충한 게 지금 버전이다. 작품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협했나를 느끼고 있다.
특별히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나.
김소희: 사실 처음에 블랑쉐라는 캐릭터나 대본이 매력적이지 않았다. 굉장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특별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이 연극은 한 인간이 이웃들에게 추방당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좀 잘난척을 한다는 이유로 추방당하는 일이 너무 많다. 그걸 안 순간 이게 아주 특수한 이야기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도가 출연한 영화에서는 우울한 지점들이 많이 부각됐지만, 이번 공연의 블랑쉐는 극단의 감정이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흘러갔다. 관객들에게 이 여자를 어떻게 설명하고 싶었나.
김소희: 블랑쉐는 비참할 때 더 고고하게 굴고, 우울함을 감추기 위해 더 명랑한 척 하면서 거꾸로 산다. 어떻게 보면 광대 같기도 하다. 웃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이 너무 외롭고 무섭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만들려 하는 거고,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만큼은 존재를 증명 받는 느낌인 거다. 오랫동안 자기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과 벗어나는 순간이 다른 삶을 살아왔을 거고, 그것을 다양한 목소리 톤이나 공간의 변화, 눈빛 등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사실 연극 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꽤 많을 거다.
어떤 점에서 블랑쉐와 연극의 공통점을 찾았나.
김소희: 객관적인 상황에서 더 불행하다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너무 시시하고 재미없고 이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랬을 때 연극이라는, 우리가 만든 한정된 세계 속에 들어가면 내가 존재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블랑쉐가 “현실이 정말로 무엇을 해줄 수 있죠?”라 묻는데 그게 연극이랑도 참 잘 맞는다.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그것이 옳다고 믿는 것도, 블랑쉐가 부르는 ‘여긴 마법의 세계예요. 온갖 거짓으로 가득찬. 하지만 당신이 날 믿는다면 현실이 될 거야’라는 노래도 그렇다. 물론 실제로는 굉장히 노래 잘하는 여자가 부르지만. (웃음)
거짓과 진실, 조와 울이 순간에 뒤바뀌는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진동이 너무 강해서 대체 저 에너지를 어떻게 매일 쏟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김소희: 사실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 극이다. 감정도 그렇고, 비흡연자인 나는 극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면 체력이 확 떨어진다. 300석 규모의 중극장인데 마이크를 쓰는 것도 아니라서 효과를 내줄 수 있는 외부적 요소가 많지 않다. 요즘엔 공연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날 공연에서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나 소리를 낼 수 있다. 공간을 채우는 파장이라는 게 있고, 그것까지 소리를 내주지 못하면 관객들에게 전달이 되질 않는다. 얼굴이 그렇게 잘 생긴 것도 아니라서 (웃음) 공간을 조절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공간을 조절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김소희: 주로 호흡법인데 숨을 잠깐 멈춰보면 그것에 따라 공간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거다. 좋은 스포츠 선수들이 힘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확 터트리는 것과 비슷하다. 숨을 풀었다, 당겼다, 폭발했다가 끌고 가는 것. 관객들과 보이지 않는 숨의 줄다리기를 하는 거다. (웃음) 난 발성이나 공간의 힘, 그리고 관객과 상대배우의 리액션에 많이 의존하는 배우라서 더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연기할 때 내가 분리된다는 느낌이 있다. 약간 유체이탈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는 내 연기와 관객, 심지어 무대 뒤까지 보이고, 오히려 몸이 릴렉스 되면서 자유를 느끼고 뭘 해도 틀리지 않는 연기를 하게 된다. 매일 오면 좋겠지만 자주 오진 않는다. (웃음) 연희단거리패에서는 그런 훈련을 자주 한다. 연기하고 있는 나를 내가 다시 바라보면서 내 연기를 조절하는 것.
일반적으로 연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 기술적인 접근은 범주에 넣지 않는 편이지 않나.
김소희: 배우가 감성이 좋고 풍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배우의 가치는 관객에 의해 결정된다. 스스로 진실 되게 연기를 했다고 해도 대사가 잘 들리지 않거나 표정이 어그러지면 오히려 관객은 멀어진다. 그래서 배우 스스로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배우의 감정이라는 것도 자신이 가져서 되는 게 아니라 관객과 소통할 수 있어야 가치 있는 거다. 때로는 불편하고 낯설고 공감이 될 수도 있는데 배우와 관객이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감정 좋은 사람은 배우 말고도 많다. 치정살인 같은 걸 봐도 그렇고. (웃음) 배우에게는 감정을 가치 있게 변환시키는 기술과 태도, 그리고 진정한 영감이 중요하다.
대학 연극동아리부터 따지면 어느새 24년째 연극을 하고 있는 셈인데 시작은 어땠나.
김소희: 그때의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그래서 동아리방들을 기웃거렸는데 다른데는 신입생이 한 명이라도 오면 좋으니까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준다. 학교를 다녔던 88년도는 거품경제가 피크였던 때라 (웃음) 깔끔한 연대생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근데 연극동아리방에는 도저히 대학생 같지 않은 모습의 누군가가 인사도 안하고 그렇다고 가라고 말도 안하고 노래만 하고 있었다. 나도 그게 썩 불편하지 않았고. 노래 다 부르고 나서는 “1학년이냐”고 묻더니 그게 다였다. (웃음) 1+1=2가 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런 비논리적인 분위기가 좋았고 재밌었다. 연극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지내면서 연극이라는 세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수행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고,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게 매력적이었다.
졸업 후 한 극단에서만 벌써 17년인데, 어떤 점이 본인의 패턴과 잘 맞았나.
김소희: 나는 여러 사람을 비슷비슷한 단계에서 만나는 게 지겹다. 한 번 알게 되면 더 깊게 알고 싶고, 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연극의 본질이라는 것이 해석하는 이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실제로 ‘이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인가’ 라는 말을 한다. 관객들이 우리의 연극을 통해 인간의 진실을 연극이라는 장르가 저렇게 신선한 방식으로 깨닫게 하는구나를 느껴주면 좋겠다. 내가 연극을 시작했던 것도 그런 면이었고, 그게 극단과도 잘 맞는다. 누가 이것을 얼마만큼 알아줄지 알 수 없다. 작품이 잘 안나오고 때로는 뻔하게 나올 때도 있지만, 우리의 존재 가치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며 좋은 작품을 내고 내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가능하면 길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호기심이나 자긍심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옅어지는데, 어떤 동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
김소희: 음... 매일 매일 일이 있었다. (웃음) 그 일이 연극을 만들거나, 연극을 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이었다. 극단 특성상 모두가 배우와 스태프일을 함께하고, 그래서 그냥 그걸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연기는 굉장히 포괄적인 거라서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매일 매일을 디테일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냥 정신이 루즈하게 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다.
연희단거리패는 연극을 하면서 같이 사는 집단인데, 아무래도 스스로의 삶이 너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김소희: 연극 시작할 때부터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안했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다. 결국 내가 이 사회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해야 되는데 난 전혀 알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연기랍시고 연기에 빠지지 않을까, 그건 껍데기인데 하는 두려움. 모두가 그런 리듬을 지키기 힘들 때가 있다. 대신 그걸 넘으면 그대로 갈 것인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이 온다. 그걸 통해 좀 더 단단해지거나 자유로워진다. 다행히 내 리듬과 연기가 함께 갈 수 있었고, 그것들을 겪으면서 직설적이었던 내 성격도 그냥 인정하게 됐다.
굉장히 흔치않은 조직이다.
김소희: 삶과 연극이 분리되기 쉽고 그런 호흡을 체인지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연극과 함께한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는 우리를 이상주의 공동체라 말했다. 사실은 거의 사라져가는 집단이지. 그게 좋은 사람들이 결국 남게 되는 거라서 그러다보니 기술적인 연기지도 외에도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상이 있으면 알아서들 아플 수 있지만 우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아니다 싶을 때 서로를 보호하지 않고 극렬하게 부딪힌다. 형제, 자매, 삼촌, 이모처럼 일부러 더 비수를 꽂는 셈이다. 그리고 그걸 이윤택 선생님이 아프지만 깨우칠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신다.
5년 전부터는 대표로서 극단을 책임지고 있다. 극단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을 텐데, 단원시절과 대표시절은 어떻게 다르던가.
김소희: 많이 다르다. (웃음) 단원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늘 조율하는 일을 해왔는데, 대표는 의외로 다양하고 대외적인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정부지원금에 대한 것들이랄지, 극장 총괄 관리 등. 거기다 극단의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 우리 집단을 연구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그쪽과도 조율을 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아니지만 어떤 때는 배우보다 트레이너로서의 자질이 더 있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웃음) 그걸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좀 아쉽다. 대신 하나씩 가르쳐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지 못하는데도 스스로 깨우치는 후배들을 보면서 기다리는 법도 배우게 됐다. 다시 트레이닝을 하게 되면 길게 보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영화와 드라마에서 도드라지는 배우 중 연극무대를 거친 사람들이 많다. 연희단거리패 출신도 많은 편인데, 늘 그곳을 지키는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볼 때는 어떤 기분인가.
김소희: 확실한 자기 비전이 있고 어디서든 스스로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 문제없다. 나가서 최선을 다하는 친구들은 너무 보기 좋고, 그 세계도 다이나믹하고 살아있는 느낌을 줄 거다. 연극과 연기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르고 정답은 없다. 나는 연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어떤 연기를 선보이는가가 중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가든 남아있든 안타까운 부분도 없진 않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김소희: 계속 변명을 한다거나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 그동안 내 연기가 변화된 시기들을 보면 늘 이전에 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전에는 왜 그걸 몰랐을까 생각해보면, 제대로 보면 내 존재가 무너질까봐 안 봤거나 슬쩍 흘려버렸을 거다. 진짜에도 층위가 있다. 그걸 깨달아야 다음 국면이 온다. 나도 안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않으면 새로움이 오고 싶어도 찌꺼기 때문에 오질 않는다. 연기는 굉장히 깨어있어야 하는 작업이다. 이것도 수행 같은데 (웃음) 자기 문제를 보고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부분을 정확하게 보고 그걸 내가 갖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움직이게 된다.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연극 무대 외의 연기에 대한 의향은 없나.
김소희: 이건 내 의향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 (웃음) 다른 매체에서 연기를 하는 건 괜찮지만 그게 중심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비즈니스랑도 잘 안 맞지만, 나로 그게 잘 될 것 같지도 않잖아. (웃음)
<욕망> 종료 후에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
김소희: 우리가 자존심을 지키며 작품을 하지만 먹고도 살아야 돼서 일을 많~이 한다. (웃음) 그러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많이 나가기도 하는데, 그래도 꽤 오래 있어준 친구들이 많다. 지금 루마니아에서 초청이 와서 11월 2~3일에 이오네스코의 <수업>을 4회 공연한다. 21일에 <욕망>이 끝나면 밀양에서 주말공연 하고 바로 출국하는 스케줄이다. 스웨덴 극작가인 스트린드베리 100주기 페스티벌도 하고 있는데, 루마니아에서 돌아오면 바로 거기에 참여하는 스웨덴 팀을 케어해야한다. (웃음)
그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극단을 거쳐 갔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극단을 찾을 텐데,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준 같은 게 있나.
김소희: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은 특별히 가리지 않는다. 대신 훈련은 같이 하되 연기가 안 되는 사람들을 마냥 시킬 수는 없다. 무대에 서는 건 다른 거니까. 결국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도 살아남아야 되고, 잘 해야 된다. 난 경쟁자가 별로 없어서 지금까지 있는 거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