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덫에 빠져 게으름쟁이를 만드는” 베로나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만 사는 게 아니다. 죽음으로도 갈라놓지 못한 연인만큼 죽고 못 사는 베로나의 두 신사, 발렌타인(김호영)과 프로튜스(이율)도 있다. 서른 즈음의 셰익스피어가 쓴 <베로나의 두 신사>는 그가 평생 써온 37편의 희곡 중 가장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다. 단어의 출몰횟수만큼 등장하는 인물들도 어김없이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은 툭하면 자신만의 ‘여신’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른다. 댄스버전으로, 록버전으로, 그리고 어쿠스틱버전으로. 두 친구 발렌타인과 프로튜스는 만나기만 하면 “함께 가자 내 형제여 손에 손을 마주 잡고”라는 말도 안 되게 우스꽝스러운 구호를 외쳐대지만, 그들을 둘러싼 모두가 그 구호를 부러워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하지만 절대로 벌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두 남자 사이에도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역시 그 모든 단초는 여자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그들은 누군가의 장난과도 같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토록 돈독해보이기만 하던 우정은 습자지 한 장처럼 가벼워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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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대결.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같은 존재론적 고민에 휩싸인다면, <베로나의 두 신사>는 사랑이냐 우정이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최초의 희곡인 이 작품은 절대로 심각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운 감정의 갈등을 네 남녀의 한바탕 소동극으로 만들어 쉴 새 없이 휘몰아쳐 나간다. 특히 과장된 톤과 액션으로 진지하게 상황에 몰입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데, 이러한 리얼리티가 배제된 스타일의 연기는 녹음으로 우거진 무대세트와 만나 관객들을 제3의 시공간으로 초대하기에 이른다. 또한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인 독백은 배경음악처럼 삽입되는 언더스코어 위에 얹어져 인물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베로나의 두 신사>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에 주목한다. 정체된 삶을 살던 인물들은 사랑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성장에 있어 적극성을 지닌 인물들은 위기의 순간 숲으로 숨어버리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다. 밤이 되면 아버지에 의해 탑에 갇히던 실비아(김아선)는 발렌타인과의 사랑을 위해 스스로 탑에서의 탈출을 감행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 프로튜스를 그리워하던 줄리아(최유하)는 남장을 하고 그를 찾아 떠난다. 바야흐로 “사랑에 빠진 자여 용기를 내라”인 셈이다. 사랑 타령이라 손발이 오그라들고 낯간지럽다고? 하지만 당신이 제 아무리 라푼젤보다 더 높은 철옹성 안에 갇힌 철벽녀라 할지라도 <베로나의 두 신사>를 보는 1시간 30분 동안은 맘껏 웃고 떠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