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특징
① 초록색 피부톤을 가지고 태어난 엘파바와 허영심 많은 금발의 백인 글린다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서쪽과 남쪽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② 1995년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 형식으로 발간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정치와 인종차별 등의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에 비해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된 뮤지컬은 상대적으로 화려한 퍼포먼스와 무대장치 등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③ 이번 서울 내한공연은 싱가포르에 이은 아시아 투어 두 번째로 5월 31일부터 8월 31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된다.
오늘의 질문: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뮤지컬 <위키드>는 서쪽마녀가 죽었다는 ‘Good News’로부터 시작된다. 역사가 승자 중심으로 쓰여지듯, 이 뉴스에도 제외된 것이 있다. 이름도 없이 악인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가 사실은 독특한 피부색 때문에 모두에게 괄시받고, 그로 인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빠진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움직였다는 점이다. 1990년대 영국에서 걸프전과 소년유괴사건 등을 접한 원작자는 <위키드>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나쁜 인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선악은 결국 기존의 이야기를 전복시키며 힘을 얻었다. 모두의 선망을 받던 오즈의 마법사는 자신의 나약함을 거대한 권력 뒤에 숨긴 기회주의자로 묘사되고, 차별받던 엘파바는 그런 마법사에 대항해 정의를 위해 싸우던 이로 그려진다.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한 엘파바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선정한 ‘지난 20년간 가장 위대한 캐릭터 100인’에 들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악이라면 그 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소설에 비해 경쾌하지만 무대가 여전히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위시리스트를 작성해봅시다
무대 꼭대기에서 소형비행기 크기의 드래곤 머신이 고개를 흔들며 연기를 내뿜는다. 글린다는 수천 개의 비눗방울을 대동하며 등장하고, 엘파바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으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오즈의 마법사는 자신을 대신한 머신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마법사의 계략으로 스파이가 되어버린 원숭이들은 날개를 달고 무대 위쪽 저쪽을 분주하게 누빈다. 중요한 소재로 소설에 등장하는 드래곤 시계를 주요 무대 디자인의 콘셉트로 삼은 <위키드>는 공간을 넘어선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엘파바에게는 단출한 이불과 성경책이 놓여있는 단조로운 테이블을, 글린다에게는 핑크색 레이스가 달린 이불과 구두로 가득찬 벽면을 부여함으로서 캐릭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설정도 놓치지 않는다. 7000개의 종류로 만들어진 350벌의 의상도 놓칠 수 없는 아이템. <위키드>에는 총 54번의 무대전환이 있지만,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쌓인 기술적 노하우는 매끄러운 전환으로 이어졌다. 최근 국내의 몇몇 대극장에서 기술적 경함으로 공연이 중단된 경우가 있었다. <위키드>는 화려한 무대로 장기공연과 사전리허설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노래를 배워봅시다: ‘Defying Gravity’(중력에 맞서)
외롭더라도 자신이 답이라 믿는 길을 가겠다는 엘파바의 노래. 중력에 거스른다는 가사대로 엘파바가 하늘로 솟아오르며 1막이 마무리된다. 2003년 초연된 이후 9년간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위키드>는 드라마 <글리>에서부터 애니메이션 <심슨가족>과 <사우스 파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에서 쉽게 발견된다. 특히 <글리>는 넘버 ‘Defying Gravity’와 ‘For Good’ 외에도 <위키드> 초연 당시 엘파바였던 이디나 멘젤이 레이첼의 엄마로 출연중이기도 하다. <어글리 베티>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 글린다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한 ‘Popular’가 자주 등장한다. 넘버들은 다른 장르에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영국 웨스트엔드의 엘파바 케리 엘비스는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함께 록 버전의 ‘Defying Gravity’를, 캐나다의 랩퍼 드레이크는 ‘Popluar’를 샘플링해 랩 버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감탄사를 배워봅시다: 오즈머니나!
오즈에서 놀랐을 때 외치는 감탄사. 라이선스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할 때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가 바로 개사다. 한국어와 어순이 다른 영어의 경우 특유의 라임을 살리기 어렵고, 문화의 차이로 가사 자체를 바꿔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위키드>에서는 ‘멘탈붕괴’, ‘대 to the 박’, ‘꾸며-줘’와 같은 인터넷 표현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대사의 리듬에 맞춰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이번 개사작업에 참여한 이지혜 작곡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기보다 문장 내 농담의 위치를 동일하게 맞추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글린다에게서 꾸미는 법을 전수받고 머리카락을 튕기던 엘파바를 보며 무대 위 글린다와 객석의 관객이 동시에 웃을 수 있었던 이유다.
심화학습: ‘다르지 않아’
지난 21일 종영한 온스타일 <이효리의 골든 12>에서 생명사랑을 주제로 만든 노래. <위키드>는 드라마, 코미디, 액션, 멜로를 비롯해 출생의 비밀까지 온갖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 작품이다. 얇고 넓게만 펼쳐진 듯 보이지만 수면 아래 자리한 깊숙한 성찰들이 어느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성장드라마로도, 정치드라마로도, 동성애드라마로도 보인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의 뿌리는 다름에 대한 인정이다. 동물이 언어를 습득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오즈에서 유일한 동물인 염소 딜라몬드 교수의 해고는 엘파바가 편견에 도전하는 발화점이 된다. 엉뚱하기만 했던 갈린다가 글린다로 이름을 변경한 것도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던 딜라몬드를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위키드>는 21세기에 등장한 가장 쉽고 재밌고 성실한 교과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