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무대 위의 방진의를 볼 때 어김없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하나는 “옷이 하늘하늘해서 그런 것”이라고 그녀를 변명하게 만드는 마른 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몸에서 “갈비뼈를 다 열고, 뼈를 울려서 만들어내는” 깊고도 높은 목소리이다. 그리고 이처럼 쉽게 예측할 수 없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부분들이 그녀를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방진의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극히 속물적인 고등학생이거나(<그리스>) 시침 뚝 떼고 내숭의 완결판을 보여주는 여자였고,(<아이 러브 유>) 결혼식 한 시간 전 결혼하기 싫다며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철부지(<컴퍼니>)였다. 그런 일련의 작업 끝에 만난 <마이 스케어리 걸>(이하 <마스걸>)의 살인자 미나도 ‘방진의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라는 얘기가 동료배우, 관객, 관계자 할 것 없이 당연하듯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사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거세하고 본다면, <마스걸>의 미나는 몬드리안을 훌륭한 소설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당당했고, 소심한 대우에 비해 사랑에 있어서 늘 솔직하고 적극적인 여자였다. 딸 셋에 아들 하나의 대가족 둘째 딸로 태어나 “언니는 맨날 예쁜 긴 생머리 해주고 나는 항상 삐삐머리만 해줬다”는 부모님의 은근한 ‘아들’ 대우에 자신의 미모를 배반하는 털털한 성격을 터득한 그녀는 그런 성격들을 자신이 표현하는 많은 캐릭터들에 그대로 투영시켰다. 그렇게 자신에게서 출발해 그 인물로 들어가는 연기 스타일은 특히나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미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미나는 사실 참 운도, 복도 지지리 없는 애에요. (웃음) 물론 살인은 나쁜 거지만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최대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방법을 택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새로운 삶을 꿈꾸는 걸 보면 굉장히 용감하고 당찬 아이인 것 같아요.”
뮤지컬 <마스걸>은 2006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용우, 최강희 주연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살인’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심한 남자 황대우(신성록, 김재범)와 엉뚱한 여자 이미나(방진의, 손현정)의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제2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DIMF)의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 긴 시간동안 탄탄히 내실을 다져온 작품이기도 하다. “대우는 실제 주변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사실 미나는 살인이라는 소재를 가져오기 위한 기능적인 인물이에요. <마스걸>에 등장하는 ‘살인’은 그저 소재일 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미나라는 캐릭터에 공감대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여자들만의 특성을 보여줘야겠더라구요. 그래서 여자들의 내숭이나 솔직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여자들에게는 공감대를, 남자들에게는 여자에 대한 환상과 괴리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여자도, 사랑도 굉장히 스케어리한 부분들이 많잖아요. 실제로 연인들이 상대의 비밀을 알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물론 희한한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연애이지만 (웃음) 만남에서 이별까지 사랑의 모든 과정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뮤지컬 <마스걸>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트와 특이한 소재, 극 앞뒤로 ‘이야기’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배치하여 동화적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대우와 미나가 결국 이별에 이르게 된다는 결론은 의외의 지점에서 리얼리티를 구축하며, 이 작품이 단순히 식상한 로맨틱 코미디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후일담이 궁금해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미나라는 캐릭터의 전사가 궁금해지는 <마스걸>은 7월 19일까지 신촌에서 계속되며, 이후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다. DIMF와 뉴욕뮤지컬페스티벌(이하 NYMF)은 매회 각국의 작품을 서로의 페스티벌에 소개하는 일련의 교류작업들을 진행 중이며, 지난 2회에서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었던 <마스걸>이 올 9월에 열리는 NYMF에 초청되어 맨하탄의 주요 공연장에서 8회 가량 한국어로 선보일 예정이다.
장르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방진의가 꿈꾸는 것은 사실 일상에서 보이는 ‘평범함’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극적인 부분들이 많은 뮤지컬 장르 안에서는 더욱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에 그녀의 답변이 돌아온다. “특이하고 재밌는 역을 많이 했지만 웃겨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저는 사실 굉장히 진지하거든요. 가끔은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작품도 정석으로 분석하고 그러는데 제가 하면 사람들은 다 웃어요. 얼굴이 웃기게 생겼나? (웃음) 하지만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진지하게 연기에 임할 거예요. 윤여정 선생님이나 나문희 선생님처럼 주위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의 캐릭터와 사람이, 그리고 여배우가 아닌 배우가 되고 싶어요. 꿈꾸면 또 그대로 되잖아요. (웃음)” 꿈꾸면 그대로 된다는 무모하지만 확고한 믿음, 그동안 우리가 놓친 것은 그 믿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