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동안 방송된 원작은 시청률 40%를 훌쩍 넘겼다. 미실, 비담, 춘추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차고 넘쳤고, 그들의 주인공은 고현정, 김남길, 유승호였다. 청춘의 불안과 사랑이 있었으며, 낮은 곳으로 임하는 신념이 있었고, 지독하리만큼 강한 라이벌이 있었다. 뮤지컬 <선덕여왕>은 동명의 드라마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이고 태어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이 부담이면 부담이겠지만, 그만큼 극적인 성공 역시 보장되어 있다. 자신의 신분을 모른채 낭도가 된 덕만(이소정ㆍ유나영)이 구렁이 같은 마력의 미실(차지연)이 벌려놓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 된다는 내용은 드라마와 같다. “하늘의 힘이 조금 필요합니다” 같은 대사나 ‘달이 가리운 해’, ‘발밤발밤’ 같은 드라마 OST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수많은 태생적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안은 뮤지컬은 드라마와 다른 어떤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뮤지컬 <선덕여왕>은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31일까지 공연된다.
노래와 춤이 있다고 모두 ‘뮤지컬’인 것은 아닙니다 5
먼저 뮤지컬 <선덕여왕>에는 드라마 후반부 눈에 띄게 늘었던 덕만을 둘러싼 멜로라인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또한, 뮤지컬이 감춰진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장르인만큼 그동안 속을 알수 없었던 드라마 속 미실에 비해 뮤지컬 속 미실(차지연)의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전체 극을 이끌어나가는 분위기이다. 원작과 달라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뮤지컬은 극단적으로 미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무대에서 한번도 본적없는 것 같은 이상봉 디자이너의 의상, 오프닝에 등장하는 LED 첨성대 외에도 춘추(김호영)와 미생(이기동)이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은 흡사 SF적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지극히 영웅서사적 스토리를 가진 <선덕여왕>은 미래적인 분위기 안에서 정체성을 잃고 흔들린다. 또한 전투신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서는 ‘미래’ 콘셉트라 부르기엔 시대착오적인 연출력으로 헐겁게 삐걱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80분씩 62회, 약 5000분에 걸쳐 진행된 내용을 단 150분으로 압축하면서 스토리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큰 줄기는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사이사이 숨어있던 잔가지들이 잘려나가면서 그저 뮤지컬로만 이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멜로라인마저 사라져 비담(강태을)과 유신(이상현)이 왜 두 번씩이나 무릎을 꿇으며 덕만에게 충성을 맹세하는지, 미실과 함께 했던 춘추가 대체 덕만의 어느 부분에서 “어머니와 동일한 꿈”을 봤다는 것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셈이다. 그저 ‘여왕만들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캐릭터의 감정은 휘발되어 버렸다. 하여 주요 캐릭터인 미실과 덕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저 단편적이고 기능적으로만 소비될 뿐이다. 대중들이 ‘뮤지컬’이라는 단어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함도, 층층히 쌓아올린 캐릭터의 감정이 없으니 “극적인 변화”도 느낄 수 없다. 원작에 충실한 재연만이 뮤지컬의 새로운 매력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3년전 초연된 <대장금>의 실패를 통해 모두 배운 사실이다. 과연 <선덕여왕>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