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차르트!>, 배우 박은태 (텐아시아)

“우리나라에서 못하면 나만 욕먹으면 끝이다. 하지만 외국 나가서 못하면 한국 사람들 노래실력은 저 정도구나, 가 돼 버린다. 그게 너무 싫었다. 한국에 나보다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박은태는 지난 11월 독일의 뮤지컬배우 우베 크뢰거의 콘서트에 초대 되어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다녀왔다. 파란 눈의 외국인은 동양에서 온 한 남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공연을 함께한 배우는 큰절을 했다. 박수갈채에 도취될 만도 하다. 그런데 그는 다시 “기본기”를 얘기한다. 2006년 <라이온킹>의 앙상블로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2010년 <모차르트!>와 <피맛골 연가>를 통해 주연의 위치에 선 그의 입에서 나오기엔 제법 당혹스런 단어였다. 하지만 박은태는 바로 그때가 “질풍노도의 시기”였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유럽에 다녀온 이후 다시 달릴 수 있는 목표가 생겨 기분 좋다”고 말했다. 박은태에게는 일찍 시련을 겪고 경험을 밑거름 삼아 부쩍 성장한 자의 은근한 여유가 묻어났다.
‘유럽진출 1호’라는 별명이 붙었던데.
박은태: 하아, 너무 부풀려졌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자꾸만 “떼돈 벌겠네” 이런다. (웃음)
정확히 하자면 독일의 뮤지컬배우 우베 크뢰거의 콘서트에 출연한 것이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박은태: 뮤지컬 <모차르트!>팀이 함께한 <김준수 뮤지컬 콘서트-Levay with friends>에 우베 씨가 참여했었다. 공연 끝나고 서로의 관계자들끼리 나중에 다른 공연도 같이 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구렁이 담 넘듯 확 추진이 됐다. 사실 그 콘서트는 이미 모든 계획이 완료된 상태였고, 내가 가면 금액이나 프로그램적인 부분에서 모든 게 추가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프로모션 개념으로 공연과 관계된 모든 부분을 우리 쪽에서 부담하고 나 역시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는데, 그쪽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스폰서를 잡아줬고 후에 공연비까지 받았다. 덕분에 빈에서 화장품 들고 사진 엄청 찍었지. (웃음)
공연이 잘 끝났지만, 가기 전에는 정말 걱정이 많이 됐을 것 같다.
박은태: 제일 걱정된 부분은 역시 언어였다. <모차르트!>의 ‘내 운명 피하고 싶어’와 <엘리자벳>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두 곡을 하기로 했는데, 도저히 독일어로 부를 수 없어서 솔로곡인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한국어로, 우베 씨와 함께 불러야했던 ‘그림자는 길어지고’는 한국어와 독일어를 섞어서 불렀다. 준비할 시간은 짧고 독일어는 모르고, 그러다보니 1-2-3-4-7-8-3-7-5 식으로 가사를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1이 나올 자리에 3이 나와 버리면 뒤로 죽죽죽 다 틀려버리더라.
두 개의 언어를 혼용한 노래라니. 콘서트이긴 했지만 역시 노래에 감정을 담아야했을텐데 쉽지 않았겠다.
박은태: 엄청 어려웠다. 그래도 아는 척 하는 거다. 몰라도 그런 척. (웃음) 영상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이런 걸까? 하면서. (웃음)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긴장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박은태: 사실 빈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을 많이 한 무대였다. 그 나라 사람들 앞에서 그 나라 말로 노래를 한다는 게 이렇게까지 긴장되는 건지 몰랐었다. 거기다가 한국에서의 일정이 있어서 공연 하루 전날에서야 빈에 도착했다. 리허설 첫날 처음 동선을 맞추고 연습을 했는데 계속 틀리는 거다. 진짜 큰일난거지. 비행기 안에서 내내 연습했고, 노래를 입에 다 붙였다고 생각했는데도 우베 씨랑 눈을 맞추고 연기를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들어가면 다 까먹어버렸다. 공연 당일 리허설 때도 제대로 완창을 하지 못했다. 우베 씨는 계속 “Calm down, Calm down” 그러고, 앙상블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 같고, 거기 관계자들이 나를 우습게 쳐다보는 거 같기도 하고.
다행히도 공연 때는 실수 안했나보다.
박은태: 실수를 안 하긴 했는데 마이크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고 있더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곡 모두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곡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시 느끼던 불안감으로 다 갔다. (웃음) 몸은 경직됐을지언정 노래는 실수 안했다. 약간 무대체질인가봐. (웃음)
그래서 우베 크뢰거가 무대에서 큰절을 한 건가.
박은태: 아마 그 큰절은 우베 씨 본인의 안도의 의미도 있었을 거라고 본다. 고생 많았다, 이런 거. (웃음) 같이 긴장을 많이 했으니까. 무조건 내 책임이었지만, 자기 공연인데 그도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나. 다행스럽게도 공연이 잘 끝나서 주위에서 너무 좋아해줬다. 빈 공연장 출연자 출입구에서 우베 씨를 기다리던 팬들이 내가 나오니 다 박수를 쳐줬다. 너무 감동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동양인 특유의 자신감 부족이 있었고, 독일어를 엄청나게 잘 하는 것도 아니라 주눅이 많이 들었는데, 그런 환호를 받으니 자신감이 좀 생겼다. 그래서 그 다음 독일 함에서의 공연은 조금 편해졌었다. 다음번에는 전체 공연에 날 포함시켜 주겠다는 얘기도 했는데, 말뿐이라도 기분이 너무 좋더라.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겠다.
박은태: 우베라는 사람을 보고 느낀 점이 정말 많았다. 이제 나이가 오십에 가까워지는데 여전히 엄청난 수의 팬들이 모이고, 무대에서 섹시하더라.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그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 역으로 넘어가고, 섹시함보다는 연륜의 연기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편인데, 2시간 반 동안 공연된 무대 위의 우베에게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기본기에도 놀랐다. 걸음걸이, 무대에서의 동작, 관객을 좌지우지하는 화술, 눈빛, 음정이 떨어지지 않는 발성 등등. 사실 <모차르트!>가 끝나고 기본기에 대해 간과하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그는 기본이 너무 탄탄한 거다. 배 이만큼 나왔는데 춤도 앙상블들보다 더 잘 추고, 연기도 너무 디테일하고. 멋진 작품을 많이 한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우베 씨 나이쯤 됐을 때 저 정도의 카리스마, 기본기,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충격이고. 오래간만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기본기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런 걸 몸으로 느끼던 시기가 있었나.
박은태: 올해 <노트르담 드 파리>(이하 <노담>) 국립극장 공연이 시작이었던 거 같다. 노래가 전처럼 안됐고, 성대결절까지 왔다. 기본기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인지도는 올라가고 작품은 계속되는데 안 좋은 발성으로 하니 목이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였다. 그때 아예 발성을 다시 배웠다. 위기에서 발상을 찾는다고 새로운 길을 찾았던 것 같다. 바닥까지 치고 나니까 좀 괜찮아졌다. 무대에서 그런 경험을 안했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헤헤거리고 말았겠지. 흔들리는 건 좋은 것 같다. 위기를 많이 맞으면 맞을수록 더더욱.
하지만 “흔들리는 게 좋다”라는 말은 이미 그 시기를 지났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지난번 <피맛골연가> 당시 한 인터뷰에서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했던데.
박은태: <노담> 이후 <모차르트!>를 하면서 기본기보다는 좀 더 주인공으로서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하던 때였다.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스타가 되어야 하나 싶었다. 주변에서 자꾸 티켓티켓하니까. <모차르트!>하면 지금도 자연스럽게 시아준수 얘기도 많이 하고. 마음은 들떴고 목표는 사라졌는데, 주변 멘토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모두 다 다른 얘기를 했다. 무대에 선다는 것,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렸었다. 솔직히 돈에 대한 욕심도 생겼고, 뭔가 마음을 딱 정하지 못하고 “에이 몰라”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유럽을 다녀와서 좀 정리가 됐다.
어떤 방향으로 정리가 됐나.
박은태: 무대가 무서운 곳이라는 걸 느끼게 되면서, 무대에 책임을 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시 기본기를 가자. 이제는 확실한 중심이 있어서 멘토들의 이야기도 거를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자리 잡아야 된다고 하면 진짜 그래야 되나 싶었다. 근데 이젠 그렇게 얘기하면 “자리 못 잡으면 어때”라고 받아칠 수 있다. 공연 횟수와 관계없이 나를 보러 온,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는 공연을 하고 싶다. 그게 정답인 것 같다. 스타가 되고 안 되고는 상관없다. 그저 그 공연을 통해 내가 성장하는 거니까. 그런 마음이 들면서 좀 편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좀 지나간 느낌? 눈에 생기가 좀 도는. (웃음)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레슨을 받으러 다니나. 인터뷰 끝나면 바로 춤레슨 받으러 가야된다고 하던데.
박은태: 전엔 내가 춤을 못 추니까 ‘다른 부분에서 더 열심히 해서 매꾸자’는 식으로 맨날 피했다. 그런데 빈에 갔다 와서 더 이상 피할게 아니구나 싶더라. 기본기가 없으니까 어디 가서 뮤지컬배우 박은태라고 하는 게 요즘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뮤지컬배우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는 게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본기가 튼튼한 뮤지컬배우가 되자, 이게 내 목표가 됐다. 사람들이 나한테 하도 변했다, 변했다 그러는데 인정한다. 난 변했다. 사람들한테 박수 받고 날 알아보는데 안 변할 수가 없다. 하다못해 옷도 좀 차려입고 다녀야 되고. 그런데 그걸 굳이 안변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대신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 며칠 전에 “네 머릿속엔 너밖에 없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맞다. 지금 내가 배울 시간도 없는데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나. 빨리해서 뮤지컬배우가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변했다는 건 인정하고, 내가 해야 할 건 빨리 하려고 한다. 그런 것들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나한텐 내가 더 중요하니까.
일주일에 몇 개의 레슨을 받고 있나.
박은태: 1주일 내내 레슨이다. 발레, 재즈, 성악, 연기. 예전에 발레를 배운 적이 있긴 한데, 쉬는 기간 동안 눈에 띄게 늘어보자는 생각에 재즈랑 발레는 매일 받고 있다. 그 중 역시 제일 어려운 건 춤인데, 얼굴이 화끈화끈 거리면서도 하긴 다 한다. (웃음)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연기라기보다는 화술을 좀 배우고 있다. 띄엄띄엄 받던 것을 1주일에 한번씩. 어찌됐건 연기는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 느는 게 있지만 번역극이나 사극을 할 경우엔 일상언어가 아니고 명확한 톤이 있으니 어투 같은 걸 배워야겠더라. 어색하지 않게끔 어투의 법칙 같은 걸 배운다. 성악의 경우엔 여자 소프라노, 남자 테너, <모차르트!> 때 만난 채임경 음악 선생님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받아왔는데, 2번씩으로 늘렸다. 거기다가 특별히 돈 버는데가 없으니까 (웃음) 나도 학생들 레슨하면서 돈 벌면 그 돈으로 레슨 받으러 가고. 하하. 그런데 다른 배우들도 다 이렇게 배운다. 다만 나는 좀 티를 내야 동기부여가 되는 스타일이라 말하고 다니는 거고. (웃음)
박은태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음과 미성을 장점으로 꼽는데 성악레슨을 그렇게나 다양하게 받는 줄은 몰랐다.
박은태: 난 원래도 고음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노래방가면 삑사리가 많이 나서 주로 고음이 없는 김동률이나 신해철 노래를 불렀었다. 고음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아서 연습을 한 케이스고, 제대로 고음이 안나서 샤우팅을 했더니 미성이 발견된 거였다. 그래서 목도 잘 쉬고 결절도 많이 생긴다. 노래를 들으면 지금도 성대자체는 테너보다는 바리톤, 베이스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고음노래를 시켜서 부담돼 죽겠다. 그렇다고 저음을 또 그렇게까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샤우팅은 테크닉이기 때문에 나이 들면 힘들 거다. 성악을 5년 정도만 더 해서 서른다섯이 되면 목소리 자체에 중후한 무게감이 생기지 않을까. 그때쯤 돼서 류정한, 정성화 선배들처럼 중심이 꽉 잡히는 목소리로 <영웅>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가지고 최대한 최선을 다해서 쓰되, 노후를 준비하는 거지. (웃음) 꾸준히 연습해야 된다.
그런데 사실 배우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본기의 중요성은 알지만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작업이라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하는 면이 있지 않나. 명확한 목표와 확신을 갖고 먼 미래를 준비하는 느낌이다.
박은태: 내가 올해 <모차르트!>를 할 수 있었던 건 지난 5년간 성악레슨을 1주일에 한 번씩 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노담>에서 잘 몰라서 삽질하고 <사랑을 비를 타고>에서 소리 지르다 성대결절이 생긴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겪으면서도 1주일에 한 번씩 했다는 것, 그 힘을 믿는 거다. 처음보다 늘었어요, 라는 말을 요즘에서야 듣는다. 1-2년 가지고는 결과가 없다. 어떤 책에서 본건데 20대 후반에 테니스를 배우려다 미뤘던 남자가 서른다섯에 시작을 했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시작했고, 결국 마흔다섯이 되었을 땐 프로급의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그게 현재가 된 거다. 그래서 나도 처음부터 10년을 잡았다. 10년이면 뭐든 되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한 거다. 시간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2006년 <라이온킹> 앙상블로 데뷔할 당시 일본 사계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가 전체 배우에게 자기 시계를 보고 가라는 말을 했다. 그걸 모토로 삼았다. 빨리 가는 옆 사람 시계 보지 말고, 내 시계가 천천히라도 가고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면 10, 20, 30년 후에는 얼마나 많이 가있겠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스트레스 안 받고 이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초월한 거 같기도 하고, 도전에 거침이 없어 보여서 좀 부럽다. (웃음)
박은태: 그렇지 않으면 머리 터진다. 피폐해지고 못돼지고, 나보다 잘되는 사람을 보면 시기질투 하게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이 일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한거니까. 그리고 나도 겁은 난다. 많이 나는데 해야지, 그래야 느니까. 유럽에 갔다 와서 기본기가 탄탄한 우베 씨를 보고 목표를 잡았다. 그런 목표가 생기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달려갈 곳이 생겨서.
12월 20일에 조순창, 김승대와 함께 자선콘서트를 하던데 어떤 공연인가.
박은태: 사실은 셋이 놀려고 시작한 거였는데 일이 점점 커졌다. (웃음) <모차르트!>랑 <몬테크리스토> 넘버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요들을 부를 예정이다. <몬테크리스토>에서는 ‘언제나 그대 곁에’와 ‘역사는 승리자의 것’을 부를 거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은 당글라스-빌포트-몬데고 3중창인데, 난 거기서 빌포트를 맡았다. <모차르트!>의 ‘황금별’도 <노담>의 ‘벨’처럼 편곡해서 부를까 싶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준비 중이다. 우베 씨 공연 보면서도 느꼈지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맞다. 기존 방식으로는 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이 콘서트에 참여하는 모두가 노개런티로 일을 하는데, 티켓수익은 연평도에 기부할까 생각중이다.
아까 행복해지기 위해서 선택한 일이라 했는데, 지금의 박은태는 행복한가.
박은태: 행복하다. 효자가 된 기분이다. 부모님이 내가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관객들에게 박수 받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물질적으로 많은 걸 못해드려도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 일을 선택한 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대학 잘 다니던 애가 이러니까 처음에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셨겠나.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하다 말겠지, 라고 생각하셨다더라. (웃음)
행복한 일을 해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박은태: 제일 고민이 될 때는 노래가 잘 안될 때다. 연기는 하면 늘지만 노래는 다르다. 늘긴 늘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고, 나이가 들면 탄력이 떨어지면서 또 달라진다. 목소리가 안나는것만큼 스트레스 받는 게 없다. 평생의 업이다. 뮤지컬배우로서 소리를 컨트롤해야 된다는 것, 그것이 제일 큰 고민이다.
내년 5월 <모차르트!>가 재공연된다. ‘은차르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박은태: 모차르트든 그랭구아르든 여유가 된다면 하고 싶다. <모차르트!>는 올해도 한회한회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의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더 나아진 모습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한 작품 한 작품 정리해가면서 천천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