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판>, 다양한 9첩 반상 구성 (스테이지톡)

다양한 9첩 반상 구성, Like
뮤지컬 <판>은 9첩 반상 같은 작품이다. 각 인물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신들의 상황을 말할 기회를 얻는다. 철부지 양반 달수는 전기수가 되며 성장하고, 호태는 자신의 재담으로 주변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실의에 빠졌던 춘섬은 소설로 위로를 받고, 이덕은 필사를 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여섯 배우 모두가 각 인물이 되었다가 전기수 자체가 되는 상황도 종종 펼쳐진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거쳐, 인정소설과 풍자담까지. 때로는 재담만으로, 때로는 인형극으로 선보이며 형식상으로도 여러 변화를 시도한다. 한 뼘 정도 솟은 빈 무대에는 저잣거리의 소음과 매설방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달수와 덕이가 각자의 방에서 꾸는 꿈도 드러난다. 전통예술을 주로 선보이는 정동극장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음악도 다채로운 색을 갖게 됐다. 발라드와 탱고, 스윙이라는 서양음악의 멜로디 위로 대금과 아쟁, 장구와 꽹가리가 더해져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무대 위의 모두는 한국적 춤사위와 장단으로 엄혹한 시대를 살아내는 백성의 무리가 되어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함께 만들어내고, 수시로 관객에게 말을 걸며 객석과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 마당놀이나 유랑극단의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판>에 있다. 이토록 숨 쉴 틈 없이 촘촘하게 구성된 <판>은 오랫동안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온 크리에이터들의 팀워크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일당백의 노동 강도에도 드물게 모든 배우가 원캐스트로 참여하면서 배우들의 찰진 호흡이 극 전체에 경쾌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때로는 산만한, Dislike
<판>이 깔아놓은 판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깊이가 다소 얕고 쏟아지는 소재와 요소 간의 연결고리가 느슨해 때로는 극 자체가 산만하게도 느껴진다. 인물간의 관계 혹은 개개인의 삶에 집중한다면, 더 깊이 있고 디테일한 서사가 만들어질 수 있을 테다. 백성들의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 풍자담 역시 그것만 똑 떼어 별개의 작품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 조선이라는 시대가 가진 여러 한계에 집중한다면,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나 주체적인 여성의 자립기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판>은 이 가능성을 알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얕고 넓게 쏟아지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은 이 작품의 중심이 ‘전기수’라는 직업, 혹은 소설이라는 문학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판>은 어려운 시대에 앞으로 나아갈 힘은 ‘이야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소 이음새가 약해도 기꺼이 여러 이야기를 담는다. 다만,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정치 이슈를 빠르게 반영해 사이다처럼 풀어주는 풍자담일 수밖에 없다. 한쪽의 비중이 커짐으로 인해 <판>이 던지는 다양한 문제 제기들과 주제 자체가 흐려지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