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움직임을 포착한 안무, Like
아무리 원작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핵전쟁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인류와 돌연변이의 사랑이라는 디스토피아적인 설정으로 각색된 작품을 다수의 관객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작품이 ‘순수의 결정체’로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독특한 안무로 이 낯선 설정을 주목하도록 한다. 연극 <됴화만발>에서 검객의 움직임을,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 혁명의 혼란을 스타일리시하고 힘 있게 그려낸 안무가 심새인이 구현한 돌연변이의 안무들은 본능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다수의 턴과 점프, 슬라이딩과 큰 동작 위주의 아크로바틱한 안무가 동물적인 순발력과 민첩함을 표현해내고, 여기에 관절을 이용한 움직임은 이들을 마치 좀비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특히 3층 높이의 철골 구조 세트를 최대한 넓고 깊게 사용하고, 레드의 조명과 이들이 내지르는 괴성들이 만나 극 전체에는 세기말적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강렬한 록 비트에 맞춰 돌연변이들이 튀어나오는 방식의 구성은 이들에게 예측할 수 없어 궁금한 존재라는 이미지까지 부여한 셈이 됐다. 코러스배우들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몹신이 인상적이다.
철학적 사유의 아쉬움, Dislike
상상의 영역인 돌연변이를 나름 구체적으로 제시한 덕에 몽타궤의 돌연변이 소년 로미오와 카풀렛의 인간 소녀 줄리엣의 사랑이 아주 황당하지는 않다. 이들은 서로의 다른 모습에 이끌렸고, 다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싶어”라며 각각 인간과 돌연변이가 되기를 희망한다. 설정이 달라지면서 인간이 아닌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는 로미오와 그런 그를 리드하는 줄리엣의 캐릭터 역시 신선한 느낌을 준다. 덕분에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에 비해 훨씬 더 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작품이 되었다. 작품의 주제를 ‘불멸의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면, 이 자체로도 큰 무리 없는 관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적인 설정 안에서 로미오는 인간과 대립하는 돌연변이로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줄리엣과의 만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누구야”를 외치는 모습에서 관객은 쉽게 그의 혼돈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신의 실수일까 인간의 저주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로미오를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은 인간과 돌연변이 중 누가 더 괴물인지, 괴물은 과연 태어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등의 질문을 던지는 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것을 펼쳐놓은 것에 비해, 현재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리는 사유의 깊이는 다소 얕다. 디스토피아적인 설정이 그야말로 공간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다. 이 부분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SF 뮤지컬의 탄생’이라 정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