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4년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선보인 후, 베르테르는 200년이 넘도록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인칭 서간문 형태의 소설은 사랑에 빠진 한 인간의 예민한 감정으로 가득하다. 사랑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의 기쁨, 현실의 머뭇거림과 절망적 진실, 비극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소설에는 누구나 경험했지만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뮤지컬 <베르테르> 역시 원작의 서정성을 충실히 담아내며 오래도록 사랑 받았다. 실내악 편성의 음악은 애절하면서도 우아하게, 경쾌하면서도 비극적으로 연주되며 인물의 입체적인 감정을 끌어올린다.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하는 멜로디와 담백한 창법의 목소리, 여기에 문학적이되 보편의 감정을 자극하는 가사가 더해져 관객의 몰입과 공감을 돕는다. 20년간 <베르테르>는 다양한 배우들로 청춘의 한 때를 포착해왔고, 시간의 흐름에 맞춰 비극성을 강조하기보다 열정적이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담는 연출로 작품의 서정성을 이어왔다.
여전히 <베르테르>는 살아있다. 다만, 문제는 대체로 베르테르‘만’ 살아있다는 점이다. 원작소설과 비슷하게, 뮤지컬 역시 베르테르가 아름다웠던 한 때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방향 시점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베르테르의 기억 속 롯데는 그의 사랑이라는 기준 안에서만 움직임이 허락된다. 인형극과 산책 장면에서 롯데의 해맑은 면이 부각돼도,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그를 보고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일 수밖에 없다. 제 마음에서 생겨나는 수 만 가지의 감정을 토로하는 베르테르에 비해, 롯데의 감정이 단편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곡의 다수가 듀엣으로 구성된 롯데에게는 감정의 동요와 변화를 담아낼 기회가 극히 드물다. 때문에 온전히 감정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솔로곡은 롯데라는 인물에 대한 상상이 아닌 도리어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그리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사랑의 비극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은 롯데의 감정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롯데 역의 배우가 섬세한 연기를 선보이더라도, 작품 안에서는 그의 진심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게 관계임을 생각했을 때, 상대의 감정이 배제된 채 이어지는 일방적인 감정의 폭격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젠더감수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등하지 않은 기회는 누군가의 말을 묵살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롯데의 시선이 거두어진 <베르테르>는 그래서 종종 따분하다. 물론 이런 한계가 <베르테르>의 매력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음악은 황홀하고,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은 매혹적이다. 한계 없는 완벽한 작품도 없다. 매력과 한계 사이,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