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위손>부터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유령 신부>까지. 명확한 콘셉트 아래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팀 버튼의 세계는 취향과 상관없이 모든 관객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화려한 색채의 자극은 종종 주제를 잊게 하는 단점이기도 했다. 아버지 에드워드와 그의 허풍 가득한 이야기를 못마땅해 하는 아들 윌의 갈등을 다룬 <빅 피쉬>도 그렇다. 작품의 70%는 에드워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무대예술이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뮤지컬은 이 한계를 명확히 인정하고 영화가 보여준 시각적 효과보다는 정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에드워드의 이야기와 현실을 오간다.
에드워드의 이야기에는 거인과 마녀, 인어와 늑대인간이라는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뮤지컬 속 마녀의 의상은 조각난 이불을 모아 붙인 듯 하고,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각종 덕트와 호스, 소쿠리로 만들어졌다. 거인은 크기만 클 뿐 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버전이며, 채도가 낮은 인물들의 의상에서는 먼지가 쌓인 듯 바랜 느낌을 받는다. 거대한 퍼펫과 가면 등 다양한 무대 요소의 등장에도 완벽하기보다는 어쩐지 허술하고 조악해 보이는 세계. 이 세계는 어떤 걱정도 없이 연신 철없고 현실에서 붕 떠있는 듯한 에드워드에 의해 완성된다. 이야기에 대한 이런 인상은 재현된 환상이 현재진행형이라기보다는 성장한 윌의 기억 속 이야기인 탓이며,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을 그 어떤 대사보다도 더 명확하게 대변한다. 그러나 뮤지컬은 이 세계를 강요하고 무언가를 주장하는 대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넓게 펼쳐냄으로써 윌과 관객이 자연스레 정서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린다.
작품은 꿈과 기억, 사랑을 이야기한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더 넓은 세계를 희망하던 에드워드는 떠돌아야만 했던 지난 삶과 전쟁의 경험 등을 낭만적인 모험기로 풀어낸다. 조악해 보일지라도 에드워드의 세계는 컨트리음악과 스윙재즈가 흐르고, 다채로운 색과 수선화가 함께 한다. 에드워드는 일상을 이벤트로 만든 이야기를 아들과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인생을 기억하고, 사망 후에도 오랫동안 가족 곁에서 살아 숨 쉰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라는 가사에는 자식이 삶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겼다. 박호산의 에드워드는 능청스럽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제 인생을 보여주고, 이창용은 윌의 변화를 세심하되 덤덤하게 담아낸다. 특히 뮤지컬은 가족 외에도 에드워드가 만난 다양한 인물을 통해 사랑의 범위를 친구, 동료, 이웃으로까지 확장한다.
자극적인 소재나 극적인 반전은 없다. 화려한 기술로 관객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도 아니다. 잔잔하고 따뜻한 정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이던 이야기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감정은 생각보다 넓고 깊다.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흔적을 만들어내는 나이테처럼 <빅 피쉬>에도 사랑과 여유가 가득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인생으로 대서사시를 만들었지만, 누구도 헤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야말로 누구나 꿈꾸는 판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