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디테일을 그려내는 음악, Like
뮤지컬의 ‘Overture’는 일종의 요점정리다.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의 소리와 주요 넘버들이 연주되는 ‘Overture’가 어떠냐에 따라 관객의 첫인상은 달라진다. 원 작곡가 에릭 울프슨의 사망으로 유작이 된 <에드거 앨런 포>(이하 <포>)를 위해 김성수 음악감독이 작곡한 ‘Overture’는 무겁고 빠른 비트의 타악기, 기괴한 사운드의 현악기, 까마귀의 울음과 바람소리가 3분가량 거칠게 휘몰아치며 ‘광기와 우울’이라는 포의 인생을 단번에 압축한다. 이어서 이어지는 에릭 울프슨의 ‘매의 날개’, ‘함정과 진자’, ‘관객석 그 어딘가’, ‘영원’ 등은 스토리를 견인하는 기능적인 뮤지컬넘버로서가 아닌 각자의 싱글처럼 하나하나 듣는 재미를 준다. 이런 에릭 울프슨의 곡들 사이에서도 ‘갈가마귀’와 ‘다른 날’을 비롯해 다양한 언더스코어까지 새롭게 창작된 11곡은 이질감 없이 섞여 들어간다. 특히 ‘갈가마귀’는 작품을 통틀어 단연 돋보이는 곡. 침묵에 가까운 피아니시모로 시작해 극장을 진동으로 울릴 만큼 강하게 퍼지는 곡의 흐름은 “트라우마로 남았다”(김성수 음악감독)던 동명의 시의 전개와 맞닿는다. 넓은 음역대와 순간의 도약 등은 ‘갈가마귀’를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곡으로 만들어냈다. 여기에 김성수 음악감독이 디자인한 악기들이 내뿜는 거친 질감과 구체적인 공간이 그려질 정도의 사운드가 만나면 기괴한 세계관이 구축된다. 허점 많은 작품 안에서도 <포>의 음악만큼은 제 역할을 한다.
빈틈 많은 1차원적 결과물, Dislike
프레스콜에서 박영석 프로듀서는 작품이 가진 분위기와 다양한 상징 등을 이유로 <포>를 영화 <곡성>에 비유했다. 그 말에 일정부분 동의하지만, 재창작에 가까운 이번 공연은 뚜렷한 중심 없이 표류한다. 대본에서는 포가 죽기 전 20여 년에 가까운 그의 생활과 기행을 전부 다루겠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진다. 물론 포를 둘러싼 사건들이 우울증과 알코올·약물 중독, 죽음 등으로 극적인 것은 사실이며, 압축의 방식이 ‘시’와 같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의 잦은 점핑과 구체성 약한 감정의 캐릭터를 오로지 배우의 연기만을 통해 관객에게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포는 그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하고, 엄마 엘리자베스부터 엘마리아와 버지니아 등의 여성캐릭터들은 그가 느끼는 ‘그리움’이나 ‘외로움’ 그 이상 그 이하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결국 ‘포를 파멸시키겠다’는 일관된 욕망을 관철시키는 그리스월드만이 이 작품의 승자가 된다. 빈약한 스토리를 채우기 위해 세트와 조명, 음악과 영상이 포의 세계를 구현하려 고군분투한다. 포가 “각인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두려워했던 까마귀의 거대한 날개와 뒤틀린 여러 개의 액자프레임이 그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화경과도 같은 영상이 환각 속 그의 모습을 그려낸다. 알파벳이 비처럼 떨어지며 작품의 영감을 얻는 ‘매의 날개’와 ‘MURDER’나 ‘BLOOD’ 같은 단어들이 투사되는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장면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는 상징이라기보다는 1차원적인 재연에 가깝다. 이것이야말로 ‘시’와 가장 반대편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