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선생님 아가씨를 부탁해요 (텐아시아)

한 남자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여자는 다른 세계에서 초대되어 두리번거리는 멀끔한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아가씨”라며 여자를 불러 세운다. 남자는 서울에서 이제 막 부임해 자기소개를 연습중인 스물둘의 강동수(강필석·이지훈)이고, 여자는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열여섯인 최홍연(정운선)이다. 홍연은 아가씨라는 정체불명의 호칭에 “가게나 보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고무줄 하자”는 아이들의 보채기도 모두 “아가씨”로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시골 마을,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신기한 감정들이 홍연의 마음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가씨에서 “홍단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거쳐 동수로부터 제대로 “홍연이”라 불리는 순간, 그렇게 나비의 날갯짓은 시작된다.
무대도, 배우도, 관객도 성장하는 송정리 8
2008년 초연 당시 동수역을 맡았던 오만석이 연출가로 합류한 <내 마음의 풍금> 시즌 3은 많은 부분에서 은유법보다는 직유법을 선택한다. 그동안 노래로만 소개되었던 홍연이의 일기는 무대 바닥에 조명을 이용해 달력을 만들어내고, 스스로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 홍연이는 묶었던 머리를 풀어 진짜 아가씨로 변신한다. 미세하게 추가된 대사와 가사는 캐릭터의 감정을 좀 더 쉽게 보여주고, 샤갈의 그림은 실제 세트로 만들어져 노출되는 등 지난 시즌에 비해 좀 더 대중 친화적 옷을 입으며 친절한 내레이터가 되었다. 그와 함께 홍연과 동수를 제외한 진구엄마(배문주)와 정복이(정철호) 등 조연캐릭터들에도 살이 많이 붙었다. 과하지 않게 추가된 대사들은 캐릭터의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주고, 그들 나름의 전사를 갖게 되면서 동수로 인해 송정리 모든 사람들이 함께 성장한다는 주제의식에 더욱 가까워졌다. 대신 양수정(임강희)이 짓는 쓸쓸한 미소 속에 감춰진 미묘한 감정이나 커튼콜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홍연이의 구두가 상징하는 이야기 등은 더 이상 보물찾기 하듯 찾아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의 풍금>은 빛바랜 동화책처럼 아련하고도 포근하다. 훅 하고 불면 쌓인 먼지가 입안으로 들어온다해도 전혀 해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매해 수많은 한국 창작뮤지컬이 탄생하지만, 획일화된 장르와 짧은 준비기간을 보여주는 허술함 등과 같은 결함으로 쉽게 사장된다. 하지만 <내 마음의 풍금>은 매년 초연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전 시즌을 답습하지 않아 기존관객과 새롭게 유입되는 관객 모두를 아우른다. 뮤지컬을 주로 소비하는 2030 여성만을 타겟으로 삼지 않고 전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매년 재공연을 부르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재공연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 중 하나가 된 <내 마음의 풍금>은 2월 21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