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헬렌 앤 미>, 모두의 이야기 (스테이지톡)

모두의 이야기, Like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헬렌 켈러는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가 그 누구보다 활발한 지식욕을 가졌고, 이후 소외된 이들을 위해 꾸준히 발언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뮤지컬 <헬렌 앤 미>는 익히 알려진 헬렌의 어린 시절에 머무르는 대신 그가 어떻게 영향력 있는 성인 여성으로 성장했는지에 주목한다. 성장의 동력은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 시작은 자신의 언어를 찾는 것에 있으며, 언어를 찾은 헬렌은 곧 자기 자신인 여성, 장애인과 함께 행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 원고는 단순히 어느 장애인의 경험담으로 그치지 않을 거예요. 수십 아니 수백 년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책으로 남을 거예요.” 앤의 남편은 헬렌 켈러의 <The World I Live In>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뮤지컬은 이 대사를 증명하듯, 헬렌의 성장만큼 앤의 서사에도 공을 들인다. 약한 시력 때문에 나 모르게 일어난 모든 일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는 앤의 경험은 그 자체로 헬렌에게 용기가 되어 성장의 단초가 된다. 하지만 작품은 앤을 ‘헌신’의 아이콘으로만 소비하지 않으며 그가 헬렌과 평생을 함께 하며 겪어내야만 했던 피로에도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시선 역시 자연스레 녹여낸다. 관객은 헬렌과 앤이 겪는 상황을 따라가며 답답하고 고요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에 공감하고, 열심히 하는 이를 ‘독종’ 취급하는 사회에 분노한다. “가벼운 집안일을 하면 생리통이 가벼워진다”는 글을 함께 비웃기도 하면서. 제목처럼 헬렌으로 시작해 앤을 거쳐 결국 ‘미(me)’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뮤지컬.
가벼운 표현법, Dislike
<헬렌 앤 미>는 극단 걸판이 <앤>에 이어 만든 두 번째 뮤지컬이다. 특정한 인물을 통해 보편의 감정을 끌어내 관객의 공감을 얻는 최현미 작가의 장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도드라진다. 여기에 <헬렌 앤 미>는 헬렌이 가진 물리적 한계를 음악으로 돌파한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배우 송영미의 맑은 목소리는 헬렌의 감정을 투명하게 담아낸다. 특히 헬렌이 타인을 인식하는 방법인 “들뜬 발걸음”이나 “공기의 갈라짐”, “진동” 같은 가사를 통해 비장애인인 관객이 주인공을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서도록 돕는다.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라는 극단의 모토답게 장애를 극복하는 헬렌의 이야기는 위인전처럼 마냥 주인공을 신성시하거나 절망을 강조하며 어두워지지 않는다. 불안과 분노 속에서도 평생을 알고자 했던 의지만큼 헬렌의 표정은 파안에 가깝다. 쉽고 밝아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작품인 것은 맞다. 그러나 대중적이되 직관적인 음악과 움직임처럼 걸판이 추구하는 표현법이 때로는 가볍게 느껴진다는 한계 역시 존재한다. 크고 과장된 액션에 알록달록한 의상까지 더해지면 <헬렌 앤 미>의 타깃 관객층을 의심하게도 된다. 조금 더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무대와 객석 사이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다음 단계를 위한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