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사랑과 죽음의 얼굴 (스테이지톡)

별과 우주 그리고 로봇.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에는 원작 웹툰이 가진 SF적 상상력이 존재한다. 원작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가 시각적 구현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네 존재의 서사를 그린다면, 뮤지컬은 ‘복제 로봇’과 인물의 직업적 설정만 가져와 비슷하되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낯선 설정이 시공간적 한계가 뚜렷한 무대 공연에서 명확하게 납득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뮤지컬은 논리적 허점으로 모호해진 부분을 감성을 건드리는 가사와 음악으로 채운다. 웹툰과 뮤지컬은 시각과 청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보낸 시간은 곧 서로의 역사가 된다. 둘의 역사는 서로가 부재했을 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고, 웹툰과 뮤지컬은 이 정서를 공유한다. 박해림 작가의 가사들은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감정을, 일상을, 추억을 구현한다. “보고 있자면 너의 손을 찾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 사랑의 설렘을, “이 차가운 도시 위에 저 멀리 바람이 불면 구름이 당신을 채갈까 두렵기만 해”가 사랑의 불안을, “우리는 모두 처음, 우리의 사랑도 다시”가 사랑의 희망을. 가사들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취향과 성향을 그리기도 하고,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상대를 모르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포착해 담아낸다. 언어가 구체화되면 될수록 도리어 감각은 또렷해지고 관객은 그 감각을 통해 사랑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민하 작곡가의 곡들은 가사를 충실히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음악들은 피아노 멜로디 위로 현악기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기타의 담담한 톤이 더해져 우주를 유영하듯 흐른다. 감상적인 곡들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와 제법 잘 어울린다. 특히 <이토록 보통의>는 리프라이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복제 로봇’이라는 상황을 기능적으로 설명한다. 작품의 테마곡인 ‘이토록 보통의’는 이례적으로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해 세 차례 불린다. 익숙한 멜로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서사의 진행과 함께 달라지는 곡의 화자는 모두 다른 감정을 꺼내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누군가의 바람과, 두 사람의 행복과, 혼자 남은 이의 쓸쓸함.
<이토록 보통의>는 은기의 죽음 이후 남겨진 제이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홀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제이의 고군분투는 웹툰에서는 축약된 부분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이런 제이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작품을 사랑의 본질을 넘어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경험하지 않으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성보다 감성이 지배하는, 사랑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토록 보통의>가 세심하게 골라낸 언어와 음표는 경험의 유무를 떠나 그 마음을 상상하도록 한다. 비논리의 영역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 어쩌면 음악은 이런 이유 때문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