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오래된 뒷골목 어딘가에 최지호가 있었다. 그는 계단에 앉아 촬영에 필요한 의상을 기다리며 아이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를 했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소한 행동이 하나의 화보처럼 보이고, 그에 걸맞은 까칠함도 가졌을 것 같은 사람. 대중에게 모델이라는 직업은 언제나 그런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의상을 갈아입을 곳이 여의치 않았던 뒷골목, “그냥 여기서 하자”며 좁다랗고 후미진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최지호는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예전에도 그렇게 자신이 가진 외형을 지우고 어수룩한 모습에 진심을 담아내 왔다. 계란말이를 제대로 말지 못해 쩔쩔매면서도 매일 친구의 아침을 챙기는 보디가드(<앤티크>)였고, 남들이 다 웃을지언정 예능프로그램에서 진지하게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열창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요청에 “술 먹고 자주 부르던 노래”라 선택했다고 말하는 최지호는, 솔직하고 명쾌하다.
최지호를 이끄는 사고의 유연성과 객관화
“어떤 선택의 단계에 왔을 때, 잘 재지 않는 편이에요. 특별한 기준도 없어요.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거에요.” Simple is best. 그래서 < GQ >를 보다 “주지훈, 여욱환이 멋져보여서” 중학교때부터 했던 태권도를 그만두고, 제대 바로 다음 날 모델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멋 부리고 서있으면 되는 거라던 감독의 말에”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이하 <개늑시>)을 통해 TV 속으로 불쑥 들어왔고, “사석에서 우연히 만난 성재준 연출로부터 오디션 제의를 받아” 초연멤버들이 모두 모인 뮤지컬 <싱글즈>에 겁 없이 덤볐다.
남들에 비해 쉽게 기회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가진 사고의 유연성과 빠른 순발력, 그리고 객관화 덕분이었다. “<개늑시> 이후 연기를 안하려고 했거든요. 그러다 <앤티크> 제의를 받았는데 친구들이랑 하는 작업이라 재밌겠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이건 뭐 발성도 안 되고, 국어책 읽고 있고. 바로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를 탓하기 보다는 앞을 향해 전진할 또 다른 자양분을 찾아낸 셈이다. 그래서 “잘한다는 말보다는 왜 그렇게 못해, 라는 말을 들어야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른다”는 최지호와 뮤지컬 <쓰릴 미>의 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릴 넘치는 게임이 된다.
“접근은 단순하게, 부딪힘은 치열하게”
190cm의 훤칠한 키와 수트를 멀끔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탄탄한 몸. 최지호는 모든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그’를 위한 외형적 필요충분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동시에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쓰릴 미>의 마니아들과 디테일한 연기가 강점인 배우들 사이에도 서있다. 매번 뮤지컬 관계자와 팬들로부터 노래의 취약성을 지적받는 그는 8명의 배우 중 노래를 가장 잘하는 최수형과 한 팀도 되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해버렸어요. 열등감으로 접근하면 5~6개월씩 함께 못 가요.” 그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제법 불리한 출발선에서 “눈빛, 손짓 하나까지도 계산하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감정을 담담하게 무대에 펼쳐놓는다. 하지만 최지호만의 ‘그’는 관습을 벗어난 새로움으로 무대를 잔뜩 긴장시키며 <쓰릴 미>에 정확한 자기 이름을 새기는 중이다. 운동선수에서 화려한 런웨이의 모델로, 다시 연기자로 움직인 그가 어느 순간 외줄타기에 도전한다고 해도 놀랄일은 없을 것 같다. “접근은 단순하게 하되 부딪히는 건 치열하게, 그게 좋더라구요.” Simple is best. 역시다.
My name is 최지호
1980년 11월 25일에 태어났다. 이제 서른하나. 철없이 살고 싶은 게 인생의 목표라서 나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인생 흘러가는 대로, 실수 안하고 살면 좋은 것 같다.
용인대 태권도학과를 나왔는데, 사실 공부 안하고 대학갈 수 있는 방법이 운동이어서 중학교 때 시작했던 거다. 입학하고 부모님께 “대학 갔으니 이제 내 맘대로 할게요”라고 했다.
<앤티크>는 평소 놀던 모습이 담겼다. (주)지훈이와 (김)재욱이는 워낙 친하게 지냈던터라 너무 편했다. 우리 놀던 자리에 카메라가 있었다는 점만 달랐다.
나름 귀여운 면도 있고 어리버리한 <앤티크>의 수영이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나와 닮은 인물이었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인데, 춤은 포기한 지 오래다. (웃음) <싱글즈>때 막춤도 추고 그랬는데, 앞으로 춤추면 큰일 난다.
예전에 ‘노래도 연기도 못하고, 화보집 찍는 것도 아니고’라는 리뷰를 본적이 있다. 노래와 연기 둘 다 가져가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연기에 승부를 걸자, 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순간순간 상황에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며칠 전 함께 공연하는 (최)수형이 형이랑 한잔했다. 마초처럼 보이지만 내성적인 사람이다. 연습 시작하고 2~3주가 될 때까지도 대화가 없었을 정도로 생각보다 말이 없다. (웃음) 그런데 공연을 시작하고 나서는 먼저 전화도 오고, 제법 친해지는 중이다.
술을 잘하진 못하는데 술자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요즘 꽂혀있는 건 막걸리.
최지호의 ‘그’(이하 리처드)는 ‘나’(이하 네이슨)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네이슨을 자신의 ‘꼬봉’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 리처드의 캐릭터를 잡기가 힘들었는데 네이슨을 이용하겠다, 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니 오히려 스스로가 훨씬 편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타자기 때문에 실수를 몇 번 했다. 손가락이 자판 사이에 걸려서 안 나온 적도 있어서 실수 안하려고 자꾸 독수리타법으로 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타라락- 잘 하던데. (웃음) 첫공연 때는 긴장하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네이슨과 계약서를 쓰다가 찢어먹기도 했다.
(김)재범이형의 네이슨과 한번 싸워보고 싶다. 눈빛에서부터 손짓까지 굉장히 치밀하게 연기를 하는데, 그런 네이슨을 만난다면 리처드는 완전히 돌아버리겠구나 싶다. 각기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점에서 재범이형이랑 부딪혀보고 싶다.
6월 17일 (김)하늘이 첫공연 날에 응원하러 못갈 것 같다. 그날이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다. 이미 못 간다고 통보해 놨다. 하늘이한테는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런 경기들은 생맥주 마시면서 라이브로 봐야 된다.
무대는 공연이 진행되는 순간 집중을 요만큼이라도 놓치면 극 전체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장르다. 몸 상태가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장르고 <쓰릴 미>는 워낙 디테일한 작품이라 관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설경구, 오달수, 주진모 선배님과 함께 영화 <해결사>를 찍었다. 남자냄새 물씬 나는 액션영화인데, 나쁜 쪽 형사를 맡았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그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근과 채찍 중에 난 채찍을 좋아한다. 이건 나에게 있어서 불문율과 같다.
아이폰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건 맞고다. (웃음) 아이팟 때문에 아이폰을 산거였는데, 신기한 기능이 정말 많더라. 기계치라 잘 모르긴 하지만, 최근엔 트위터도 시작했고 카카오톡도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역시 1위는 언제나 맞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