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전과] chpter.19 <어쌔신> (텐아시아)

단원의 특징 ① 16대 링컨부터 40대 레이건까지 120년에 걸쳐 미국에서 일어난 9건의 대통령 암살사건을 암살자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콘셉트 뮤지컬로, 1990년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② 뮤지컬은 암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환부와 ‘루저’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외로움을 서늘한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③ 2005년과 2009년에 이어 세 번째로 제작된 2012년 <어쌔신>에서 황정민은 연출이자 배우로 출연하고, 공연은 오는 2월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계속된다.
단어를 배워봅시다: 콘셉트 뮤지컬
주연과 조연을 나누지 않고 각자의 사연을 가진 여러 인물의 관계를 통해 주제에 접근해가는 뮤지컬의 한 형식. 하지만 이런 구조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있으나 뚜렷한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아 다소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쌔신>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을 ‘대통령 암살’이라는 콘셉트 아래 병렬로 세웠는데,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콘셉트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스티븐 손드하임-해롤드 프린스의 대표작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컨트리, 행진곡 같은 미국적 소리를 이용해 존 웨이드만이 그려낸 미국의 다양한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켰다. 특히 2012년 <어쌔신>은 시공간이 혼재되어 있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콘셉트 뮤지컬의 표현양식을 “너네 시대는 그렇게 가르쳤나” 같은 대사나 캐릭터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는 행동 등으로 쉽고 코믹하게 풀어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고향을 알아봅시다: 이탈리아
루즈벨트 대통령 암살미수자 쥬세피 장가라의 고향. 대통령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함께 있던 시카고 시장 살인건으로 입건됐다. 장가라와 폴란드 출신 레온 촐고츠를 통해 <어쌔신>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든 미국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넓은 땅이 불러 모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 대신 편견과 무시 속에서 생태계의 최하위층을 형성했다. 장가라 역시 전기의자 사형틀에서 “난 빨갱이 아니야 /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냥 사람 / 똑같은 미국인”이라 노래한다. 하지만 이 날의 주인공이었던 장가라는 그를 잡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용맹했는지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철저히 단역으로 치부된다. 이민자를 향한 깊은 괄시, 가장 미국적 텍스트의 <어쌔신>을 미국만의 이야기라 얘기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다.
나이를 알아봅시다: 27
존 윌크스 부스와 촐고츠가 링컨과 맥켄리 대통령을 암살할 당시의 나이. 암살자들 사이에서 “선구자”라 불리는 부스는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 링컨을 독재자로 칭하며 암살했고, “시간당 6센트”의 임금을 받던 노동자 촐고츠는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며 맥켄리를 사살했다. 전쟁으로 국민이 분열됐다 믿는 부스와 대통령이 선량한 사람들의 적이라 생각했던 촐고츠는 <어쌔신> 안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촐고츠는 장가라와 같이 전기의자에서 처형당했고,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유해는 황산에 넣어졌다고 한다. 1873년에 태어나 “스물일곱이나 먹었는데 제게 인생이 없어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대체 뭘 한 거예요”라 말하는 그의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에도 있다.
별명을 알아봅시다: 쥐
37대 대통령 닉슨의 별명. <어쌔신>에 등장하는 암살자들의 목적은 몇 가지로 분류가 가능한데, 찰리 귀토와 세뮤엘 비크 사이에는 가필드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의 ‘지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의를 저버린 이들을 향한 분노가 암살시도로 이어진 케이스. 비크의 경우 자신의 넋두리를 녹음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보내는데, 스티븐 손드하임은 이 작품의 작사가로 데뷔했다.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띠는 비크의 장면은 올해 “멀쩡한 강을 왜 파헤쳐”나 “국민들이 새 세상을 누리는 새누리 나라를 만들겠다” 같은 현실반영적 대사로 통쾌함을 살렸다.
노래를 배워봅시다: ‘Another National Anthem’
못난 놈과 패배자를 위한 국가. 정치적인 이유로 대통령을 암살한 이들도 있었지만, 존 힝클리와 리네트 스쿼키 프롬은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레이건과 포드 대통령에게 총을 겨눴다. 9인의 암살자는 미국이 제시하는 자유와 풍요 속에서 되레 빈곤을 느꼈고, 결국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기” 위해 암살을 선택했다. 연신 냉소로 암살자들을 대하던 해설자 발라디어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를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 역시 이러한 사회적 살인을 역설한다. 뮤지컬은 도덕적 판단 대신 그늘에 확성기를 가져다놓았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창녀 같다”는 말을 듣거나 아무런 희망 없이 소처럼 일하다 이용 당하거나 능력과는 별개로 외모로만 평가를 받았다. 누구나 암살자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을 향한 그들의 조준을 당신은 과연 저지할 수 있는가.